[정치] 사슴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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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사슴은 말이 아니다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02.25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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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와 사자성어

국회의원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야의 격돌이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여당의 모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공천 기준을 지적하면서 "친명횡재, 비명횡사"라고 비판했다. 신판 사자성어로 유행할 듯싶다.

이어 야당의 모 의원은 자당의 의원 평가에서 자신이 ‘하위 10%’를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자신이 처한 현실을 '과하지욕(袴下之辱)'에 빗댔다.

이는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이라는 뜻인데 훗날 항우를 꺾고 유방의 한나라가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한 한신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한신은 젊었을 때 동네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굴욕을 참아가며 훗날을 기약했던 인물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운문(韻文)을 맞추기 위해 한자 4글자로 이루어진 단어가 많다. 그래서 한자 4개가 모인 말이라고 해서 '사자성어(四字成語)'라고 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고사성어(故事成語)와 사자성어는 다른 것이다.

고사성어는 역사에 대한 일을 알아야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있지만, 사자성어는 한자 4개만 모아 이루어진 단어라면 전부 사자성어가 된다. 그래서 고사성어지만 사자성어는 아닌 단어도 있고, 반대로 사자성어지만 고사성어는 아닌 단어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사자성어든 고사성어든 때에 맞춰 적절히 사용하면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임의로 막 지어 당장 대중의 효과만을 누리려 한다면 오히려 화가 미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몇 가지 예시를 본다.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은 전형적 소인배를 나타내고 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진작 정치권에 둥지를 틀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하다"는 의미를 담은 ‘부초서천’은 13-17, 19-20대 국회의원과 36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에 연달아서 터트린 망발이자 망언, 설화로 ‘이부망천’에 이은 또 다른 정치인의 지역 비하 발언이었다.

이부망천(離富亡川)은 2018년 6월 7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TV 토론 중 당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정태옥이 지역 비하 발언을 내뱉은 사건으로 난리가 났었다.

이 표현은 '서울에서 살다가 이혼하면 부천으로, 망하면 인천으로 간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리 생활과 문화의 일부지만, 자칫 잘못하면 말 한마디에도 사람들의 감정이나 지역 사회의 인식까지 담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이러한 표현은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며 함부로 발설해선 안 된다. 즉, 감언이설(甘言利說, 달콤한 말과 이로운 이야기라는 뜻으로 남의 비위에 맞도록 남을 꾀하는 말)도 경계선(境界線)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혹자가 이르길 정치인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달인이라고 했지만, 심지어 사슴을 가리켜 말(지록위마, 指鹿爲馬)이라고 한다면 이는 분명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는 말)으로 귀착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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