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승만과 계백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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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승만과 계백장군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02.19 0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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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충보국(盡忠報國)

자신의 칼로 처자를 죽인 계백

이승만 다큐멘터리 건국 전쟁

곡해된 (run)승만

6·25 전쟁, 남한 전역 폐허로

낙동강 방어선의 가치

제일 먼저 당신을 쏘고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

우국충정(憂國衷情)

국회의원 특혜 186가지

계백(階伯) 장군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그는 백제 말기의 군인이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략할 때 가족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충성 약속을 지킨 인물로 알려져 있다.

군사 5천을 이끌고 황산벌에서 5만의 신라군과 네 차례의 전투를 벌인 끝에 백제군이 전멸하고 계백도 전사했다.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충신’이라 불린다.

660년 당의 신구도대총관(神丘道大摠管)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수군과 신라의 상장군 김유신이 지휘하는 5만 육군이 수륙 협공으로 백제를 침공했을 때, 계백은 5천의 결사대로 황산벌에서 신라군을 만났다.

이때 계백은 "작은 나라의 병사로 당의 대군과 신라를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쾌히 죽는 것이 낫다."며 자신의 칼로 직접 처자를 죽였다.

황산벌에서 계백은 월나라 왕 구천이 5천의 군사만으로 오나라의 70만 군사를 격파한 일을 언급하며, 무서워하지 말자는 말로 병사를 독려했다.

뒤늦게 재평가되고 있는 인물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이 개봉 17일 만에 관객 6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국민적 관심의 척도를 보는 듯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이승만을 6.25 전쟁이 터지자,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간 ‘런(run)승만’으로 오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된 그 이유를 굳이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 글의 제목처럼 이승만과 계백장군의 공통점만을 부각하고자 한다. 김일성이 소련 스탈린과 중공 모택통의 지원까지 받아 가며 일으킨 6·25 전쟁은 얼추 남한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다.

급기야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린 7월 29일 밤 이승만은 프란체스카 여사를 불러 “적(공산군)이 대구 방어선을 뚫고 가까이 오면 제일 먼저 당신을 쏘고 내가 싸움터로 나가야 한다.”면서 도쿄의 맥아더 사령부로 떠나라고 했다.

여사는 “절대로 대통령의 짐이 되지 않겠다”며 함께 있겠다고 했고, 대통령은 “우리 아이(병사)들과 여기서 최후를 마치자”고 했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때 미국은 해외나 제주도 망명 정부를 계획했지만 그조차 거부했다.

여기서 이승만과 계백장군의 굳건한 우국충정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 우국충정(憂國衷情)은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참된 마음’을 뜻한다.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월 총선에서 맞붙을 선수(選手)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자그마치 186가지나 된다고 한다. 4월 선거에서 당선될 정치인, 그러니까 제22대 국회의원들에게 미리 묻고 싶다.

“당신(들)은 당신에게 주어지는 186가지 특혜 중에서 진정 국민과 지역민을 위한 ‘우국충정’의 발로 차원에서 반납 혹은 양보하거나, 아니면 이승만과 계백장군처럼 처자식마저 희생한 채 오로지 진충보국(盡忠報國)할 방법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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