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 잡채 잡학(雜菜 雜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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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잡채 잡학(雜菜 雜學)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02.18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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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음식(百味飮食)의 리더

잡채(雜菜)는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붙이를 잘게 썰어 볶은 것에 삶은 당면을 넣고 버무린 음식이다. 주로 설날이나 추석 혹은 잔칫날에 즐겨 먹는다.

잡채는 한국의 전통 음식 중 하나로, 그 기원과 역사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다. 조선 시대(1392년~1910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에는 왕실의 음식으로 시작되었으며, 경연(경옥왕후) 왕후가 제일비와 함께 요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초기에는 잡채가 현대와 같은 형태로 존재하지 않았다. 당면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채소와 고기, 해산물 등을 섞어 만든 요리였기 때문이다. 이후, 당면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당면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면으로, 식감이 부드럽고 쫄깃하여 잡채의 맛을 더욱 높여준다. 잡채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맛과 영양성이 풍부하며, 건강에도 좋은 음식이다.

또, 색감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손님 접대나 생일상 등 특별한 날에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다. 그러나 잡채를 만들자면 손이 많이 간다. 하여 시장에서 사 먹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잡채는 잔칫날에 빠지면 ‘실정법 위반’일 정도로 푸짐한 음식의 대명사임에 틀림없다. 또한 알고 보면 잡채는 글로벌 푸드(Global food)라는 사실에 새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뭘까? 먼 옛날에도 잡채에 관한 기록이 있었다. 조선시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서는 오이, 무, 버섯, 도라지, 미나리, 두릅, 시금치, 가지 등 다양한 재료를 있는 대로 모아 양념해 먹는 음식이라 소개한다.

다만, 이 조리서에는 '잡채' 하면 떠오르는 당면이 빠져있는데, 당시 잡채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 채소 모둠의 음식이었고 종종 꿩고기가 들어가곤 했다.

녹말로 만든 국수인 당면은 청나라 때 처음 들어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한반도 전역에 보급되었다. 대규모 당면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 비로소 당면이 들어간 잡채 요리법이 등장했다.

거기에 공장에서 생산된 일본식 간장을 추가해 중국인이 운영하는 중식당의 한 메뉴가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맛보는 잡채의 기원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침략을 받던 중국은 1937년, 일본과 기나긴 전쟁을 치르게 된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중국인들은 모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중식당에서 잡채를 팔던 요리사들도 본국으로 떠나 전쟁 두 달 만에 한반도에 있던 중식당의 80%가 문을 닫았다.

이후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 따른 혼란한 시기에 잡채는 특별한 관심을 받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이 광복을 마주한 1945년 이후, 잡채는 중식당을 벗어나 분식집과 길거리에서 팔리기 시작했고, 점차 가정식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잡채의 가장 큰 장점은 주재료인 당면과 나물의 가격이 저렴하고 구하기 쉽다는 것. 게다가 재료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자 입맛과 형편에 맞추어 조리할 수 있다. 그 덕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도 수십 가지 형태로 발전해 오늘날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격월간지 ‘무내미’ 2024년 1~2월호 참고)

그러니까 오늘날의 잡채를 요약하자면 중국산 당면에 일본산 간장과 우리의 신토불이 나물 등이 버무려진 ‘삼국 합작 음식’이라는 셈법이 도출되는 셈이다. 아무튼 이제 잡채는 국민 음식을 넘어 해외에서도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하니 뿌듯함을 숨기기 힘들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면 잡채는 백미음식(百味飮食, 여러 가지 좋은 맛으로 만든 음식)의 리더격인 셈이다.

▶잡학(雜學) :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잡다한 지식이나 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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