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설날이 더욱 좋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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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설날이 더욱 좋은 이유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02.08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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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 있지만

= “내 마음 외로울 땐 눈을 감아요 자꾸만 떠오르는 그대 생각에 / 가슴에 느껴지는 사랑에 숨결 멀리서 아득하게 전해 오네요 / 사랑이 끝났을 때에 남겨진 이야기는 시들은 꽃잎처럼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겠지 /

내 마음 서러울 땐 하늘을 봐요 흐르는 구름 위에 마음 띄우며 내 곁에 와달라고 기원하면서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 =

발군(拔群)의 미모와 허스키 보이스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 계은숙의 히트곡 ‘기다리는 여심’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더욱이 그 대상이 사랑하는 가족이라고 한다면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 사람을 향한 애정과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기다리는 동안 그 사람을 생각하며 마음을 졸이기도 하고, 기대감에 부풀기도 한다.

물론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하고 힘들 수 있지만, 그 시간을 통해 상대방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 서로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또한 기다리는 것은 인내와 끈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달콤할 수 있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더욱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설날을 이틀 앞둔 오늘은 아들네와 딸네가 총출동한다. 설날과 추석이 더욱 좋은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팔불출이라고 놀릴지 모르겠지만 아들과 딸이 모두 소문난 효자다. 그래서 이를 잘 아는 지인들은 나를 꽤 부러워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어쩌면 자격 미달의 아버지였다.

이를 다 열거하기 부끄러워 두보(杜甫)의 시 ‘곡강2’를 차용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참고로 두보는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던 성당시대(盛唐時代)의 거인이었다.

그가 남긴 명언이 바로 독서파만권 하필여유신(讀書破萬卷 下筆如有神)이다. 즉, “책 만 권을 읽으면 신들린 듯이 글을 쓸 수 있다.”라는 뜻이다.

□ 곡강2(曲江2)

朝回日日典春衣 (조회일일전춘의) 조정에서 나오면 봄옷을 잡혀 놓고

每日江頭盡醉歸 (매일강두진취귀) 매일 강 언덕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네

酒債尋常行處有 (주채심상행처유) 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 있지만

人生七十古來稀 (인생칠십고래희) 인생 칠십 년은 예부터 드문 일

穿花蛺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꽃 사이 호랑나비 깊숙이 보이고

點水蜻蜓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강물 위에 점을 찍듯 잠자리 난다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풍광도 말 전하리 함께 흘러가는데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잠시 서로 즐기세 원망하지 말라

위 시를 보면 ‘매일 강 언덕에서 만취하여 돌아오네’라는 대목이 나온다. 마치 나를 비유하는 듯싶다.

능력이 없음을 탓하기보다 애먼 세상을 원망하며 술에 젖어 살았던 시절이 비일비재했다. 비겁함의 전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는 곳마다 외상 술값 있지만’이라는 부분 역시 내가 마치 무언가를 훔친 뒤 경찰에 검거된 양 심장이 덜컥거린다. 그렇지만 두 아이, 즉 아들과 딸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지극정성과 남다른 사랑으로 길렀노라 자부한다.

그래서 ‘곡강2’의 말미에 등장하는 구절 “(나를) 원망하지 말라”를 면피(免避)용 외투로 무장해 본다.

아들과 딸, 며느리와 사위, 손자와 손녀를 기다리는 나, 즉 한 집안의 아버지가 토로하는 ‘기다리는 父心’의 실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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