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거자불추 내자불거(去者不追來者不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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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칼럼] 거자불추 내자불거(去者不追來者不拒)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01.2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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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를 사랑하고 싶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2022년 4월 9일부터 2022년 6월 12일까지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후속으로 방영한 tvN 토.일 드라마였다. 14명 주인공들의 관계가 조금씩 엮이는 옴니버스 형식의 드라마로 꾸몄다.

하나뿐인 아들 동석(이병헌)과 살가운 말 한마디 섞지 못하는 일흔 중반의 어머니 옥동(김혜자)가 핵심 주인공이다.

모 기업에서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사외보 2024년 1+2월호의 ‘대중문화 속 그 음식’에서 이 영화를 다루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띈 구절은 = “그의 어머니 옥동(김혜자 분)은 젊은 시절 바다에서 남편과 큰딸을 잃었다. 남편은 뱃일을 하다가, 큰딸은 해녀로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옥동은 남편 친구의 첩으로 들어간다. 첩살이를 자처한 건 하나뿐인 아들의 입에 밥을 넣고,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자신을 끌고 남의 잡살이(’첩살이‘의 오기인 듯 보였다)로 들어간 것이 동석에겐 견디기 힘든 상처였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친구와 한방을 쓰는 어머니를 보는 사춘기 아들은 엄마에게 '남자 없이 못사는 사람‘이라는 원망의 낙인을 찍어 버린다.”= 였다.

이어 = “목포 여정에서 동석은 옥동에게 참았던 원망을 쏟아내며 "자신에게 미안한 줄은 아느냐"고 따진다. 그리고 "남자 없이 못 살겠더냐"며 모진말을 던진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옥동은 이내 "니 어멍은 미친년이라 미치지 않고서야. 그저 자식이 세끼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고 좋은 집에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멍청이처럼 바보처럼. 자식이 맞는 것 보고도 멀뚱멀뚱. 개가 물어뜯을 년"이라 말한다. 속내를 알 수 없던 옥동의 절절한 사과인 셈이다.” =가 그예 심금을 울렸다.

누구에게나 사무치게 그리운 음식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나는 수제비가 그 대상이다. 생모가 버리고 떠난 핏덩이 아기인 나를 같은 동네 사시던 ‘천사표’ 할머니가 거두어 키워주셨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할머니는 허구한 날 수제비를 상에 올렸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에 징그러워서라도 안 먹는다는 게 바로 수제비의 정체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외려 나에게 있어 수제비는 차라리 극심한 노스탤지어(nostalgia)이자 소울푸드(Soul Food)이다. 된장찌개 역시 언제 먹어도 맛있다. 이제 ‘대중문화 속 그 음식’의 대미(大尾)다.

= “(목포 여행에서 엄마와 화해하고) 제주로 돌아온 동석은 엄마에게 말한다. ”내일 된장찌개 끓여놔요. 먹으러 올게." “싫다며, 된장찌개?” "엄마가 끓여준 건 맛있어. 다른 건 맛이 없어서 안 먹은 거야."

옥동은 된장찌개를 끓여달라는 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밥을 지었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상 한가운데 올려 두고 편안히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사랑한단 말도 미안하단 말도 없이 내 어머니 강옥동 씨가 내가 좋아했던 된장찌개 한 사발을 끓여놓고 처음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단 걸. 난 내 어머니를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단 걸” = 나는 참았던 눈물이 결국 폭발했다.

사진 한 장조차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간 비정한 엄마는 어쩌면 내 평생의 원수였다. 아버지와의 극심한 불화가 원인이었다. 사견이지만 ‘유년기에 엄마를 잃으면 그 상처가 평생 간다’는 고루한 생각을 지니고 있다.

유년기에 엄마를 잃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고 힘든 경험이다. 이는 아이의 정서적, 사회적, 인지적 발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 상처가 지속될 수 있다.

엄마는 아이의 첫 번째 보호자이자 양육자로서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는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고, 사회적 기술을 배우며, 인지적 발달을 이루어나간다.

따라서, 엄마를 잃는 것은 아이에게 큰 상실감과 불안감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는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아이가 엄마를 잃었다고 해서 같은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성격, 가정 환경,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관심 등에 따라 상처의 정도와 회복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엄마를 잃었을 때는 주변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관심이 필요하다.

가족, 친구, 선생님 등은 아이가 상실감과 불안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오히려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려댔다. 또한, “엄마도 없는 놈이 공부는 정말 잘하네”라며 비웃기 일쑤였다. ‘엄마마저 버린 아들’이라는 왜곡된 시선은 어쩌면 나를 스스로 평생토록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또 다른 흉기로까지 작용했다.

어쨌든 거자불추 내자불거(去者不追來者不拒)라고 했다. ‘가는 사람은 붙잡지 말고 오는 사람 거절하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엔 동석이 용서한 ‘나빴던 엄마’ 옥동처럼 나 또한 생모에게 60년 이상 품어왔던 원망과 아픔을 이제는 그만 내려놓고 싶다.

아프지 않은 인생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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