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살인자와 피의자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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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칼럼] 살인자와 피의자는 다르다
  • 홍경석 기자
  • 승인 2024.01.0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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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치 행정은 ‘이상한 나라의 아이러니’
자유당 때 정치깡패 이정재의 조리돌림 사진
자유당 때 정치깡패 이정재의 조리돌림 사진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조리돌림’이라는 형벌이 있었다. 간음한 여인에게 가했던 형벌의 하나였던 조리졸림은 북을 이고 맷돌을 지고서 화살을 귀에 꿰어 온 마을을 돌게 했다.

또한 마을의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생기면 마을 어른들이 발의하여 동리 회의를 거쳐 처벌을 결정했다.

처벌이 결정되면 마을 사람들을 모은 뒤에 죄를 지은 사람의 등에 북을 달아매고 죄상을 적어 붙인 다음, 농악을 앞세우고 마을을 몇 바퀴 돌아서 그 죄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이 조리돌림의 핵심은 죄인을 사람이 많은 곳에 공개해 수치심을 주는 처벌 방식으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같은 범죄 행위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행해졌다. 현재 조리돌림이 시행되고 있는 국가로는 중국과 호주 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과거 1961년 5·16 군사정변 후 이정재 등의 정치 깡패들로 하여금 현수막을 들고 거리를 걷도록 한 사례가 있다.

경기도 북부에서 일주일 사이 여성 2명을 잇달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이 공개 수배한 지 하루만인 1월 5일 밤 강원도 강릉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성으로만 비쳐서 누군지 도무지 알 턱이 없었다. 이처럼 사람을 둘이나 살해한 자는 신상을 공개하지 않는 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아니 ‘이상한 나라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반면 피의자는 포토라인에 세워서 공개 망신과 더불어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그야말로 ‘조리돌림’으로 개망신을 주고 있는 게 현행 대한민국의 법치 행정이라고 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국의 정치인들과 정치 지망생들이 마치 유행병인 양 출판기념회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넘는 특혜 등 그야말로 팔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직 국회의원은 개개인이 입법기관이거늘 그동안 무얼 했단 말인가? 현재처럼 살인자에게는 인권보호라는 미명하에 얼굴을 가려주고 이름조차 공표하지 않는다.

반면 피의자 혹은 피해자는 신상을 죄 알려주는 모순을 불러오는 경우까지 왕왕 볼 수 있(었)다. 범죄자의 인권 보호는 범죄자에게도 인간으로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는 원칙에 기반한다.

이는 범죄자를 처벌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보장하고, 범죄자의 인격과 명예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반면, 피의자의 조리돌림은 피의자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모 유명 배우의 극단적 선택이었음은 다 알고 있는 바 그대로다. 따라서 하루빨리 법을 고치든가 새로이 입법을 해서라도 바꿔야 마땅하다.

살인자(殺人者)는 사람을 죽인 자인 반면, 피의자(被疑者)는 범죄의 혐의가 있어서 정식으로 입건되었으나, 아직 공소 제기가 되지 아니한 사람이다. 제발 여법(如法, 법(法)과 이치에 합당함)을 갖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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