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풀은 상처를 받았을 때 향기를 내뿜는다
상태바
[홍경석 칼럼] 풀은 상처를 받았을 때 향기를 내뿜는다
  • 홍경석 기자
  • 승인 2024.01.06 12: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와 허브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https://www.ncas.or.kr)에서 매년 제공하는 예술 지원사업이 있다. 각 분야 예술인에게 매년 창작 및 공연 등을 갖는 데 있어 자금 지원을 해 주는 참 의미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여길 통과하지 못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재작년에 첫 도전을 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작년엔 그야말로 먹고살기에 바빠 그만 찬스를 놓쳤다.

올해는 다행히 이 공모전이 다시금 시작된다는 걸 인지했다. 준비할 것이 많고 신청하는 과정 역시 만만치 않아서 교두보를 쳤다. 이 분야에 있어 달인이자 고수랄 수 있는 지역의 모 출판사 대표님을 찾았다.

국가문화예술지원시스템에서 자격을 인정받아 자금 지원을 받는 경우, 즉시 출판계약을 맺는 조건이었다. 미리 준비한 주민등록초본과 2019~2023년 동안 발간한 저서 5권도 지참했다.

별도로 나의 다섯 번째 저서인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까지 가지고 가서 사인을 해서 드렸다. 대표님의 칭찬이 거듭되었다.

“(열 곳이 넘는 기관의 시민기자 활동 등) 그 바쁜 와중에도 불구하고 매년 한 권씩의 책을 내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대표님을 소개해 준 피디님으로부터 나의 동분서주 경력을 잘 아는 까닭에 그리 말씀하셨지 싶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또한 그 대표님의 진솔한 칭찬에서 나는 역시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말은 본디 운동선수들이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선수들이 서로의 경기 스타일이나 기술, 체력 등을 파악하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선수들의 성장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된다. 선수들 간의 경쟁과 협력은 스포츠 경기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선수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면서도, 함께 훈련하고 경기를 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는 비단 운동선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서도 두루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서로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출판사를 나오면서 나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출간하는 명불허전의 허브(herb) 작가가 되리라 거듭 다짐했다. ‘허브’는 예로부터 약이나 향료로 써 온 식물을 총칭한다.

라벤더, 박하, 로즈메리 따위가 있는데 주로 ‘향기가 있는 풀’에 방점을 찍는다. 사람이든 풀이든 향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향기 있는 풀이 되자면 조건을 갖춰야 한다.

황태영 작가가 그의 저서 <풀이 받은 상처는 향기가 된다>에서 주장한 것처럼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비명을 지르거나 욕을 하거나 화를 낸다. 그도 부족하여 분노하고 고함지르고 보복하려 하고 때로는 좌절한다.

그러나 풀은 상처를 받았을 때 비로소 향기를 내뿜는다. 한데 그 향기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바람에 쓰러지고 비에 젖고 찬 서리에 떨어야 한다. 땅 밑까지 휘어지고 흙탕물에 젖어도 꺾이지 않아야 한다.

뿐이던가, 보살펴 주는 이 하나 없는 거친 들판에서 억센 발에 짓밟혀도 새로이 솟구쳐야 한다. 고통과 시련에 굴하지 않고 오해와 억울함에 변명하지 않고 꿋꿋하고 의연하게 다시 제자리로 일어서야 한다.

따라서 풀의 향기에는 살을 에는 아픔이 숨어 있다. 그러나 풀은 말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하게 향기로 미소 지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풀은 어쩌면 사람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아무튼 그렇게 풀의 향기를 머금은 ‘허브 작가’가 되자면 고온성 작물(高溫性作物)의 오기와 끈기까지 겸비해야 한다. 고온성 작물은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잘 자라는 작물로써 고추, 가지, 오이 따위가 있다.

더불어 숙근성식물(宿根性植物, 해마다 묵은 뿌리에서 움(싹)이 다시 돋는 식물)의 꾸준한 도전 자세를 견지해야 함은 기본이다.

아울러 어렵사리 만든 책이 생각처럼 많이 안 팔린다고 다시는 책을 내지 않겠다는 것은 ‘첫술에 배부르지 않은’ 당연한 현실을 회피하는 일종의 비겁이다. 이 땅의 모든 작가 바람은 베스트셀러 등극이다.

그렇게 되면 이는 *삭과(蒴果)의 선과(善果)를 불러온다. 그러한 간절한 희망이 있기에 나 역시 오늘도 글을 쓰는 것이다.

어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올부터 나는 그동안의 중견작가가 아니라 원로작가로 더욱 ‘꼰대’가 되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는 그들보다 훨씬 젊은 ‘청년작가’에 머물고 있다. 황태영 작가의 나를 격려(?)하는 문장을 추가하면서 글을 마친다.

=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묻혀 준다. 향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를 찍는 도끼는 원수다. 그럼에도 향나무는 자신의 아픔을 뒤로하고 원수의 몸에 아름다운 향을 묻혀 준다.

진짜 향나무와 가짜 향나무의 차이는 도끼에 찍히는 순간 나타난다. 평소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고통과 고난이 닥치면 진짜는 향기를 내뿜지만, 가짜는 비명만 지르고 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재물의 크기가 아니라 내뿜는 향기와 비명에 따라 그 품격이 결정된다. 내가 세상을 향해 매연을 뿜어내면 남들만 상처받는 것이 아니라 내 호흡기도 해를 입게 된다. 결국은 그 독기가 나에게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상처와 분노를 향기로 내뿜어야 나도 향기로워질 수 있다. 깊은 향, 아름다운 세상은 그렇게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

■ 삭과(蒴果): 익으면 과피(果皮)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여러 개의 씨방으로 된 열매. 심피(心皮)의 등이나 심피 사이가 터져서 씨가 나오는데, 세로로 벌어지는 것에 나팔꽃, 가로로 벌어지는 것에 쇠비름, 구멍을 벌리는 것에 양귀비 따위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