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호테의 육만 평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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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키호테의 육만 평 데자뷔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3.09.09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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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쫓는 두 마리 토끼

 

항상 새벽 4시면 눈을 뜬다. 20년 습관이다. 그렇게 일어나면 맨 먼저 소금으로 입안을 가글(gargle)한다. 이어 수돗물로 눈을 씻는다. 그래야 마음이 정제(精製)되어 쓰는 글에도 불순물(악담)이 안 들어가고, 사물을 정확히 볼 수 있어서다.

봉지 커피를 탄 뒤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글쓰기에 취미를 붙인 지도 어언 20년이다. 덕분에 최근 장편소설 <평행선>이 세상에 나왔다. 어느덧 여섯 번째 저서가 된 것이다. 처음 책을 낸 건 지난 2015년이다.

그로부터 다섯 권의 책을 계속하여 발간했으니 평균 1년 6개월에 한 번꼴로 저서를 낸 셈이다. 이처럼 다작(多作)의 작가가 될 거라곤 솔직히 처음엔 상상도 안 했다. 다만 그저 글을 쓰는 게 좋아서 계속하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별명이 무모하고 저돌적인 ‘홍키호테’인 내가 저술한 6권의 책 중 3권은 경비원 시절에, 나머지 3권은 공공근로를 하면서 집필했다. 따라서 책이 나올 때마다 감회가 남달랐다.

‘이번에 나온 책은 반드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공공근로를 안 하고 집필과 강연만 해도 먹고 살게 해 주길...’ 기도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 소원은 여전히 화중지병(畫中之餠)이다.

 

그럼에도 홍키호테는 결코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공공근로를 하자면 별일을 다 한다. 그중의 하나가 관공서에서 분양받은 주민의 1년 약정 ‘주말 텃밭’까지 관리해주는 것이다. 잡초를 뽑고 밭을 매며 농약까지 뿌린다.

그러던 중 빈 땅, 그러니까 주민이 경작을 포기한 땅이 나타났다. 그래봤자 여섯 평이나 되려나... 아무튼 정말 아까운 그 땅에 같이 일하는 반장님이 무씨를 심었다. 밭고랑 여섯 개를 하나씩 나누어 임시 분양(?)받는 조건으로 정성을 보이기로 했다.

거기에 무씨를 뿌린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거늘 어느새 푸른 새싹이 올라왔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면서 나는 내가 마치 여섯 평, 아니 차라리 마치 ‘육만 평’이나 되는 땅을 가진 대지주(大地主)라는 데자뷔(déjà vu) 착시(錯視)에 그만 잠시 행복했다.

그래, 그건 내 고단한 삶에 뿌려지는 시원한 소나기와 같은 어떤 여백(餘白)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소망이 존재한다. 내 소망은 한 시간 강의에 최소한 200만 원을 받는 것이다.

이 돈이면 하루 8시간 기준 공공근로를 한 달간 죽어라(!) 해야만 비로소 손에 쥘 수 있는 ‘거액’이다. 나는 이미 명강사로서의 소양과 경험까지 마친 지 오래다. 꿈이 없는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

홍키호테도 언젠가는 반드시 진짜 육만 평의 토지를 소유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나는 오늘도 공공근로와 집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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