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전건호시인
밤새 비는 왔다. 길고 긴 잠을 토막내며 자고 또 자다가 나폴레옹이 왜 캄캄한 밤 홀로 백마를 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품에 안은 채 광야를 달리며 울었을까를 생각했다.
꿈속에서도 이승과 비현실의 간극을 넘나들며 꿈을 꾸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독을 감당할 수 없어 노래를 듣다 시를 쓰다, 빗줄기 저편에서 나에게 도달할 수 없는 슬픔에 그렁거리다 사라져버린 어린 별똥별 하나를 연민했다.
진화덜 된 포유류 하나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은하성단을 가로질러 왔는데, 검은 비 밤새 내려 내 눈과 마주치지도 못하고 대기권 밖에서 발만 구르다 쓸쓸하게 낙하했을 어린 별!
사랑받았던 순간보다 잊혀진 순간들이 더 많았을 별 하나가 어쩌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더란 말인가?
손 한번 잡아주질 못했구나. 따뜻하게 밥 한 그릇, 충무로 번지 없는 실비집에서 국 한 사발 먹여 너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면 천정에 파르르 떠는 형광등의 간절한 그리움처럼 사무쳤을까?
어스름 새벽이 찾아오고 또 일터로 떠난다.
어제의 꿈과 충무로를 헤매는 나 중, 누가 나인지 모르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밥 한끼 얻으러 불길 속 날아드는 부나비 아니겠는가?
허름한 충무로 뒷골목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옆테이불엔 기름때 묻은 작업복 남자들이 정치를 논하며 침을 튀기는데 늙은 주인장은 구부러진 허리로 실파김치를 상에 놓고 그옆에 청양고추 토파 놓은 양념통을 진열한다.
미친놈들아 . 너나 잘해라 하며 혀를 차듯 발을 질질 끄는 노파가 스텐 컵에 물 한잔 털썩 내려놓는다. 그래, 이것이 오늘 내 몸을 부지해줄 일용할 양식이 되겠구나.
보글거리는 툭배기에 걸죽한 추어탕에 살파김치를 넣고 청양고추를 두스푼을 넣어 내장의 허기를 채워보기로 한다.
속이 알싸하다, 톡 쏘는 감칠맛, 어릴적 개천에서 잡던 미꾸라지의 파닥임과 경이롭게 물놀이 하던 열 살 메기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추어탕을 먹으며 나를 데리고 장날이면 학산장 쇠전옆 추어탕을 시켜 드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극성스럽던 유년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맛, 그을린 천장, 허름한 창문에 땀흘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에서 지난 밤 이승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막막하게 고독했던 슬픔을 달래주는 건 서글프게도 추어탕 한 그릇 뿐이구나.
진양상가옆 십이지장 같이 꼬인 골목길 끄트머리 간판 없는 추어탕집. 허름하게 살다 떠나가는 게 우리 인생이란 걸 실감하게 하는 걸쭉한 추어탕을 끓여내는 노파의 자글자글 주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반주로 내온 소주 한잔. 사는 게 유행가 아니겠는가?
저 노인도 한 때 너보다 더 이쁘고 아리따운 스무살이 있었을텐데.
강원도 산골에서 공수해온 추어를 갈아 들깨가루 듬뿍, 청양고추 두 스 푼, 실파김치 두 젓가락 곁들여 먹다, 가는국수 술술 흩어 끓여 먹는 어탕국수의 맛이라니!
, 그래 사랑이 어쩌고, 꿈이 어쩌고 다 우스워질 때, 그대가 집신벌레 같은 인생이란 게 비로소 실감날 때, 진양상가 충무로 파출소옆 구절양장 같은 골목끄트머리 간판 없는 추어탕집으로 가 볼일이다.
비전의 레시피는 노인네 손맛 300그램, 청양고추 30그램, 들깨가루 50그램, 실파김치 두 젓가락, 밭마늘 갈은 거 티스푼으로 2개. 물론 산초가루 뿌리고, 금방 담은 겉절이 배추김치, 땀흘리며 건져먹은 후 투가리에 육수 더 붓고, 가스불 올리고 가는 국수가락 한 주먹 뿌려 후후 불며 땀흘리며 건져 먹는 어탕국수. 어떠하신가, 그대!
이만하면 그대에게 상처 준 인간들 다 잊고 소주 한 잔 곁들일만 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술 한잔 따르게,
나는 아마 송글거리는 땀 닦으며 유배온 지구별의 설움을 잊어보려하니.
어서 오시라 !
2023.7.10. 목멱산 진인. 전건호
[B-612]: 추어탕 그릇 속 별의 메아리
"충무로의 오래된 골목은 단순히 번화한 거리가 아닙니다. 많은 추억을 담고 있으며 삶의 행복과 슬픔의 순간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전건호 시인이 쓴 이 이야기는 소박함 속에 생명이 살아 숨쉬는 충무로 옛 골목의 활기찬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연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왕자의 고독한 행성 B-612처럼 이 골목, 특히 간판 없는 추어탕집이 상징입니다.그것은 B-612의 유일한 장미처럼 그 독특한 이야기와 기억을 유지하면서 혼란 속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인 주인공의 밤길은 그 작은 추어탕 가게로 향합니다. 매콤한 후추와 깨로 더해진 따끈한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로의 연결고리, 강가에서 지낸 청춘의 시절, 그리운 할아버지의 추억, 그리고 주변의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순간들을 상기시킵니다.
한입 먹을 때마다 옛이야기의 맛이 물씬 풍깁니다.네온의 명멸과 선풍기가 회전하는 이 간판 없는 추어탕집은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생활의 소란과 그것이 가져오는 압도적인 감정에서 편안함을 찾는 장소입니다.
본질적으로 전건호 시인의 작품은 단지 추어탕이나 오래된 골목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인생이라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의 B-612를 발견하는 것입니다."어린 왕자가 자신의 작은 별을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충무로의 이 길과 추어탕은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의미를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번 주말 추어탕 어떠신가요? 아마도 그 따뜻함 속에서 당신만의 별, 당신만의 B-612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통음식학술연구소 대표 강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