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12의 속삭임] 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전건호시인 푸드칼럼니스트ㆍ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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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12의 속삭임] 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전건호시인 푸드칼럼니스트ㆍ음식평론가
  • 강신영
  • 승인 2023.09.12 0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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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과 이번 주말 추어탕 어떠신가요? 아마도 그 따뜻함 속에서 당신만의 별, 당신만의 B-612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푸드칼럼니스트ㆍ음식평론가 전건호시인
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푸드칼럼니스트ㆍ음식평론가 전건호시인

 

충무로 간판없는 추어탕의 추억/ 전건호시인

밤새 비는 왔다. 길고 긴 잠을 토막내며 자고 또 자다가 나폴레옹이 왜 캄캄한 밤 홀로 백마를 타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품에 안은 채 광야를 달리며 울었을까를 생각했다.

꿈속에서도 이승과 비현실의 간극을 넘나들며 꿈을 꾸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독을 감당할 수 없어 노래를 듣다 시를 쓰다, 빗줄기 저편에서 나에게 도달할 수 없는 슬픔에 그렁거리다 사라져버린 어린 별똥별 하나를 연민했다.

진화덜 된 포유류 하나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은하성단을 가로질러 왔는데, 검은 비 밤새 내려 내 눈과 마주치지도 못하고 대기권 밖에서 발만 구르다 쓸쓸하게 낙하했을 어린 별!

사랑받았던 순간보다 잊혀진 순간들이 더 많았을 별 하나가 어쩌다 나를 사랑하게 되었더란 말인가?

손 한번 잡아주질 못했구나. 따뜻하게 밥 한 그릇, 충무로 번지 없는 실비집에서 국 한 사발 먹여 너를 떠나보낼 수 있었다면 천정에 파르르 떠는 형광등의 간절한 그리움처럼 사무쳤을까?

어스름 새벽이 찾아오고 또 일터로 떠난다.

어제의 꿈과 충무로를 헤매는 나 중, 누가 나인지 모르겠지만 사는 건 어차피 밥 한끼 얻으러 불길 속 날아드는 부나비 아니겠는가?

허름한 충무로 뒷골목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시켜놓고 기다리는 동안 옆테이불엔 기름때 묻은 작업복 남자들이 정치를 논하며 침을 튀기는데 늙은 주인장은 구부러진 허리로 실파김치를 상에 놓고 그옆에 청양고추 토파 놓은 양념통을 진열한다.

미친놈들아 . 너나 잘해라 하며 혀를 차듯 발을 질질 끄는 노파가 스텐 컵에 물 한잔 털썩 내려놓는다. 그래, 이것이 오늘 내 몸을 부지해줄 일용할 양식이 되겠구나.

보글거리는 툭배기에 걸죽한 추어탕에 살파김치를 넣고 청양고추를 두스푼을 넣어 내장의 허기를 채워보기로 한다.

​속이 알싸하다, 톡 쏘는 감칠맛, 어릴적 개천에서 잡던 미꾸라지의 파닥임과 경이롭게 물놀이 하던 열 살 메기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추어탕을 먹으며 나를 데리고 장날이면 학산장 쇠전옆 추어탕을 시켜 드시던 할아버지가 생각나고, 극성스럽던 유년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맛, 그을린 천장, 허름한 창문에 땀흘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에서 지난 밤 이승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막막하게 고독했던 슬픔을 달래주는 건 서글프게도 추어탕 한 그릇 뿐이구나.

진양상가옆 십이지장 같이 꼬인 골목길 끄트머리 간판 없는 추어탕집. 허름하게 살다 떠나가는 게 우리 인생이란 걸 실감하게 하는 걸쭉한 추어탕을 끓여내는 노파의 자글자글 주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반주로 내온 소주 한잔. 사는 게 유행가 아니겠는가?

저 노인도 한 때 너보다 더 이쁘고 아리따운 스무살이 있었을텐데.

강원도 산골에서 공수해온 추어를 갈아 들깨가루 듬뿍, 청양고추 두 스 푼, 실파김치 두 젓가락 곁들여 먹다, 가는국수 술술 흩어 끓여 먹는 어탕국수의 맛이라니!

, 그래 사랑이 어쩌고, 꿈이 어쩌고 다 우스워질 때, 그대가 집신벌레 같은 인생이란 게 비로소 실감날 때, 진양상가 충무로 파출소옆 구절양장 같은 골목끄트머리 간판 없는 추어탕집으로 가 볼일이다.

비전의 레시피는 노인네 손맛 300그램, 청양고추 30그램, 들깨가루 50그램, 실파김치 두 젓가락, 밭마늘 갈은 거 티스푼으로 2개. 물론 산초가루 뿌리고, 금방 담은 겉절이 배추김치, 땀흘리며 건져먹은 후 투가리에 육수 더 붓고, 가스불 올리고 가는 국수가락 한 주먹 뿌려 후후 불며 땀흘리며 건져 먹는 어탕국수. 어떠하신가, 그대!

이만하면 그대에게 상처 준 인간들 다 잊고 소주 한 잔 곁들일만 하지 않겠는가?

그대는 술 한잔 따르게,

나는 아마 송글거리는 땀 닦으며 유배온 지구별의 설움을 잊어보려하니.

어서 오시라 !

2023.7.10. 목멱산 진인. 전건호

 

[B-612]: 추어탕 그릇 속 별의 메아리

​"충무로의 오래된 골목은 단순히 번화한 거리가 아닙니다. 많은 추억을 담고 있으며 삶의 행복과 슬픔의 순간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전건호 시인이 쓴 이 이야기는 소박함 속에 생명이 살아 숨쉬는 충무로 옛 골목의 활기찬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연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린왕자의 고독한 행성 B-612처럼 이 골목, 특히 간판 없는 추어탕집이 상징입니다.그것은 B-612의 유일한 장미처럼 그 독특한 이야기와 기억을 유지하면서 혼란 속에서 고립되어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에 휩싸인 주인공의 밤길은 그 작은 추어탕 가게로 향합니다. 매콤한 후추와 깨로 더해진 따끈한 추어탕은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로의 연결고리, 강가에서 지낸 청춘의 시절, 그리운 할아버지의 추억, 그리고 주변의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순간들을 상기시킵니다.

​한입 먹을 때마다 옛이야기의 맛이 물씬 풍깁니다.네온의 명멸과 선풍기가 회전하는 이 간판 없는 추어탕집은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곳은 생활의 소란과 그것이 가져오는 압도적인 감정에서 편안함을 찾는 장소입니다.

​본질적으로 전건호 시인의 작품은 단지 추어탕이나 오래된 골목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인생이라는 광대한 우주 속에서 자신의 B-612를 발견하는 것입니다."어린 왕자가 자신의 작은 별을 소중히 여겼던 것처럼, 충무로의 이 길과 추어탕은 상실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위안과 의미를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번 주말 추어탕 어떠신가요? 아마도 그 따뜻함 속에서 당신만의 별, 당신만의 B-612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전통음식학술연구소 대표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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