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우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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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우저 전쟁
  • 김승수 기자
  • 승인 2022.11.06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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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사례 2
김승수 MBA 지도교수
김승수 MBA 지도교수

 

1. 넷스케이프의 초기 성공요인은 무엇인가?

2.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팔기 전략의 요체는 무엇인가?

3. 2차 브라우저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파이어폭스와 크롬의 경쟁력은 무엇인가?

4. 향후 2차 브라우저 전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위해서 필요한 경쟁우위는 무엇인가?

《경영사례 2 》브라우저 戰爭

Browser Wars(브라우저 전쟁)은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웹 브라우저들이 점유율 경쟁을 하는 것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은 1990년대 후반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두 브라우저 간 경쟁을 지칭하였다.

넷스케이프가 거의 몰락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웹 브라우저 시장을 독점하게 되었다.

2차 브라우저 전쟁은 2003년 이후, 모질라 파이어폭스,구굴 크롬,사파리,오폐라와 같은 신흥 브라우저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간 경쟁을 말한다.

[표 6-2]

ㆍ 1991년 최초 웹 브라우저 출현

ㆍ1993년 Mosaic 브라우저 (무료,오픈 소스)

ㆍ1994년 Netscape 브라우저 (상용제품)출시

ㆍ1995년 Internet Explorer 출시(1차 브라우저 전쟁)

ㆍ1996년 Opera 브라우저 발표

ㆍ1998년 Netscape 다이,오프 소스인 Mozilla브라우저 나옴.

ㆍ2002년 IE 브라우저 95% 점유율

ㆍ2003년 Apple사 Safari브라우저 발표

ㆍ2004년 Firefox 1.0발표(2차 브라우저 전쟁)

ㆍ2006년 IE 7 출시(IE 6을 2001년 출시,Firefox 인기를 얻자 IE 7 업그레이드)

ㆍ2008년 ~ 현재 구글 크롬 발표로 브라우저 전쟁 더욱 격렬해짐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지금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현재'이다

 

1. 1차 브라우저 전쟁

(1)넷스케이프 태동

인터넷 역사에서 1989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이해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CERN)에 근무하고 있던 '팀 버너스 리 (Timothy John Berners Lee)'가 동료 연구원들간의 정보공유를 도와줄 목적으로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을 제안한것이다.

버너스 라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월드와이드웹(WWW)이란 제법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지금은 인터넷과 동의어로 통할 정도로 널리 퍼져 있는 월드와이드웹은 이처럼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정작 인터넷 혁명의 불꽃이 본격적으로 타오른 것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이었다.

당시 일리노이대학의 국립슈퍼컴퓨터응용센터(NCSA)에서 고성능 컴퓨터들을 위한 코드를 짜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앤드리슨은 인터넷을 좀 더 대중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앤드리슨은 3년 전 팀 버너스리가 고안해 낸 웹을 마음껏 항해할수 있는 브라우저 하나 만들고 '모자이크(Mosaic)'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자이크는 월드와이드웹을 위해 만들어진 최초의 그래픽 브라우저였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한 대학생의 소박한 발명품이 전 세계를 뒤바꿔 놓을 인터넷 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이란 사실을 눈치 챈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앤드리슨은 모자이크를 만든 뒤 인터넷에서 공짜로 다운 받아 쓸 수 있도록 했다.

'프리웨어(freeware)'로 뿌렸던 것이다. 그 이전까지 힘들게 인터넷을 이용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이크는 구세주나 다름 없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몰라도 쉽에 인터넷을 이용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장점덕분에 모자이크는 인터넷에 공개되자 마자 순식간에  이용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리자 덩달아 인터넷 이용자 수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기초적인 컴퓨터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인터넷을 마음껏 이용할수 있어지자 '월드와이드 웹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초의 그래픽 기반 브라우저였던 모자이크는 수많은 컴맹,넷맹들에게 인터넷 세상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모자이크가 인기를 누릴수록 개발자인 마크 앤드리슨의 입지는 약해지기 시작했다.

NCSA의 관리팀이 모자이크 돌풍을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자이크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곧바로 마트 앤드리슨을 비롯한 개발진들을 모자이크에서 떼어 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더 이상 모자이크 개발 작업에 관여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NCSA의 이런 지시에 대해 모자이크 개발팀도 호락호락 물러서지는 않았다.

지시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자 NCSA의 관리팀들도 마크 앤드리슨을 비롯한 모자이크 개발자들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앤드리슨은 NCSA의 이런 처사에 강하게 분노했다.

1993년 12월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한 마크 앤드리슨은 자신이 만든 모자이크를 토대로 사업을 하고 싶었다.

그는 무작정 실리콘벨리로 향했다. NCSA에서 일하면서 학교 측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뭔가 거창한 것을 만들어 내보란 듯이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돈이 없었다.

게다가 그때 까지만 해도 그는 벤처캐피털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수백만달러를 끌어모을 수 있는 시대는 아직은 먼 얘기였던 것이다.

실리콘벨리 역시 아직은 인터넷 혁명을 기반으로 한 닷컴 붐의 꿈도 꾸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 무렵 실리콘밸리에 또 한 사람이 방황을 하고 있었다. 실리콘그래픽스란 그래픽 전문회사의 설립자로 큰 성공을 거둔 짐 클라크란 인물이었다.

훗날 벤처투자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게 되는 짐 클라크 역시 이무렵에는 그냥 돈을 조금 번 평범한 사업가일 뿐이었다.

짐클라크는 그 무렵 실리콘그래픽스에서 손을 뗀 뒤 이윤배당을 둘러싸고 한바탕 분쟁이 벌어지지 비정한 비즈시느 세계에 환멸을 느끼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인물을 찾던 참이었다.

마크 앤드리슨과 짐 클라크의 만남은 1990년대 후반 실리콘밸리를 강타한 닷텀 붐의 전형적인 모델이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마크 앤드리슨과 여유 자금을 소유하고 있던 짐 클라크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짐 클라클를 만남 앤드리슨은 '모자이크 킬러'를 만들고 싶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밤을 세워 가며 만들었던 모자이크를 독식해 버린 데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그 무렵 앤드리슨은 일리노이대학 NCSA대한 감정이 최악에 달한 상태였다.

실리콘그래픽스 이후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던 짐 클라크 역시 야생마 같은 마트 앤드리슨의 패기와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이렇게 의기투합한 둘은 정말로 '모자이크 킬러'가 될 만한 브라우저를 만들었다. 바로 '모질라)Mozilla)'였다.

'모질라'는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앤드리슨이 일리노이대학에서 만든 모자이크를 무색케 할 정도 였다.

이런 상황에 고무된 클라크와 앤드리슨은 곧바로 회사를 설립했다. 처음 이들은 회사 이름을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으로 정했다.

하지만 NCSA로 부터 법적인 항의가 들어오자 고심 끝에 회사명을 '넷스케이프(Netscape)'로 바꾸었다.

그리고 곧 바로 1994년 10월 첫 번째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출시했다. 상용 브라우저로는 사실상 첫 제품이었던 넷스케이프(Netscape)내비 게이터가 몰고 온 바람은 엄청났다.

무료배포 되자마자 순식간에 사용자 수가 200만명을 돌파하면서 초기 인터넷 혁명의 진원지가 됐다.

(2)윈도우 95와 MS의 인터넷 익스플로러

넷스케이프가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을 무렵 마이크로스프트는 윈도95 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윈도 3.0을 내놓으면서 운영체제시장을 완전 장악했던 마이크롯소프트로선 한 단계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윈도 3.0 개방 당시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 사이에 인터넷이란 변수가 생겨 버렸던 것이다. 마이트로소프트로서는  윈도95를 개발하면서 인터넷 환경을 외면할수 없었다. 처음 윈도 95 개발 작업을 시작할때만 해도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웹브라우저가 순식간에  거대한 산처럼 자신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이크로스프트는 넷스케이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1994년 하반기부터 넷스케이프와 부쩍 자주 만났다.

이들은 새롭게 개발할 윈도 95상에서 넷스케이프의 브라우저가 좀 더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논의를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스 코드를 알고 싶어 했다.

당시 넷스케이프는 세상 무서운 것 없을 정도로  잘 나갈 때였다.

거침없이 몸집을 키워 나가던 넷스케이프는 그 무렵 짐 박스데일(Jim Barksdale)을 최고경영자로 영입한 상태였다.

창업자인 짐클라크와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던 짐 박스데일은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소소 코드를 보여 달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요구를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다.

수많은 PC업체들을  쥐락펴락하는 마이크로소프트였지만, 그 무렵 막 열리기 시작한 인터넷시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넷스케이프와 대면한 자리에서는 자신들 마음대로 분위기를 주도해 나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 무렵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도 인터넷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새로운 영역으로 이끄는데 실해했다는 지적이었던 셈이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떠오를수록 빌 게이츠의 부담감은 더 컸을 것이다. 빌 게이츠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마이크로소프트 고위간부들은 넷스케이프를 경계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었다.

운영체제시장 독점의 장애요소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브라우저 개발을 진지하게 고려한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를 보면서 자신이 무너뜨린 IBM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스프트가 이렇게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IBM으로 부터 많은 것을 가져 온 덕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로서는 넷스케이프에서 PC시장에 막 활성화되던 무렵의 마이크로소프트를 되 새겼 을 수 도 있다.

변혁의 시기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가는 IBM과 같은 처지가 될수도 있다는 위협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위기감을 갖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1995년 들어 5개월 가량 넷스케이프와 협상을 계속했다.

이때만 해도 마이트로소프트는 브라우저 시장에서 넷스케이프를 밀어내기보다는 서로 공존하는 방안을 찾는 쪽에 주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와 웹 브라우저 시장을 좀더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1995년 5월 26일 '인터넷 물결(The Internet Tidal Wave)'이란 제목의 메모를 통해"(인터넷은)1981년 IBM PC가 도입된 이래 가장 중요한 발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메모의 이어지는 내용은 빌 게이츠가 그 당시 넷스케이프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빌 게이츠는 넷스케이프가 급부상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에 눈을 뜬 것으로 보인다.

빌 게이츠는 골드러시 때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금광을 발견한 살감들이 아니라 바로 기반 설비를 제공했던 사람들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5년 들어 자체 웹 브라우저 개발 쪽으로 입장 선회를 한 것도 빌 게이츠의 이런 깨달음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빌게이츠의 이런 열망은 그해 8월 발표된 윈도 95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95를 내놓으면서 자체 웹 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함께 제공했기 때문이다.

(3) 1차 브라우저 전쟁과 반독점 경쟁

윈도 95와 함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시장에 나왔지만 넷스케이프는 여전히 웹 브라우저가 시장에서 강세를 유지했다.

윈도 95에서 넷스케이프 브라우저가 자연스럽게 작동하지 않도록 방해 작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넷스케이프의 위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랐다. 결국 1995년 12월 들어 빌 게이츠는 초강수룰 들고 나왔다.

바로 '끼워팔기'로 알려진 인터넷 익스플로러 무료배포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96년 10월 이후 발매된 익스플로러는 윈도 95와 함께 제공됐다.

또 윈도98 버전부터는 아예 운영체제에 통합됐다. 일부러 넷스케이프를 깔지 않는 한 인터넷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를 이용하게끔 만들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를 쫓아내기 위해 단순히 끼워 팔기 전략만을 사용한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위치를 이용해 기업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때로는 무자비 할 정도로 강하게 몰아치면서 넷스케이프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넷스케이프 CEO를 역임했던 짐 박스데일은 나중에 반 독점 재판 과정에서 휴렛패커드(HP)와 넷스케이프가 공동 상품 출시 계약을 발표했다.

빌 게이츠는 1995년에 배포한 '새로운 물결'이란 제목의 자료를 통해 "넷스케이프와 제휴를 고려하는 기업들을 손봐 주라"고 재촉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그 뒤 반독점 재판 과정에서 빌 게이츠의 위협 행위가 속속 드러났다.

특히 빌게이츠는컴팩이 자사 컴퓨터의 기본 웹 브라우저를 넷스케이프로 변경하려고 하자 강하게 위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를 포기할수 없는 입장이었던 컴팩 역시 이 같은 위협에 굴복했다.

이는 휴렛패커드나 AOL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기본 웹 브라우저로 익스플로러를 채택하는 일부 회사들에 대해 보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끼워 팔기를 통해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한편으로 컴퓨터 업체들을 협박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은 놀라울 만큼 막강한 위력을 과시했다.

넷스케이프의 영향력 걷잡을수 없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1996년 4분기 5,850만 달러였던 넷스케이프의 수익은 1997년 4분기에는 1,850만 달러 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 사이에 68%나 감소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넷스케이프는 300명 가량을 감원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식 가치 역시 최고가의 80퍼센트까지 떨어지면서 끝없는 나락을 경험했다.

1998년이 되자 넷스케이프는 웹 브라우저 사업에서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그해 여름, 드디어 웹 브라우저 시장에서 익스플로러 점유율이 44%까지 늘어나면서 42%에 머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를 앞질렀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웹 브라우저의 프로그래밍 소스 코드까지 모든것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서 사실상 이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넷스케이프로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맞선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었다. 실제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가 불과 삼사 년 만에 비참하게 시장에서 쫓겨 나간 넷스케이프의 사례는 이후 마이트로소프트와 빌 게이츠에게 '폭군'이미지를 심어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넷스케이프 이외에도 노벨,리얼네트웍스 등 많은 기업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파상공세를 견뎌 내지 못하고 뒷전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어느 기업의 사례도 넷스케이프 퇴출 만큼 시장에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 간의 웹 브라우저 전쟁은 시대의 패러다임을 누가 잡을 것이냐는 힘겨루기였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라는 재래무기를 앞세워 웹 브라우저란 새로운 영토를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웹 브라우저 시장이 한창 열릴 무렵 회사 전체가 위기의식에 사로잡혔던 마이크로소프트 입장에선 넷스케이프와 벌인 브라우저 전쟁에서  승리가 그만큼 절박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빌 게이츠는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빌 게이츠는 '공공의적'으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마이크로소프트효과'라는 말도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단 어떤 업체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나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더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면 곧바로 몰락한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었다 그 만큼 빌 게이츠으 이미지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또 실제로 당시 빌 게이츠는 시장의 질서를  무시한 정책 결정을 하는 경우도 적이 않았다.

2. 2차 브라우저 전쟁 (2006~)

'동토의 왕국'처럼 견고한 독점 체제가 지속돼 왔던 브라우저 시장에 반란의 총성이 울리고 있다.

'브라우저 원조' 넷스케이프가 지난 1999년 마이크로소프트(MS)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처참히 몰락한 뒤 브라우저 시장에는 더 이상 경쟁이란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브라우저=익스플로러'란 등식이 절대 진리로 통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윈도우 기본 웹 브라우저로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과거 윈도우 98이 사용되던 시기 즈음이었다.

그때부터 우리나라 대부분의 웹페이지도 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준으로 개발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1)10년간의 MS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함

MS가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고 난 뒤, 웹표준은 시간이 가면서 MS표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웹서비스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최적화할수록 다른 부라우저에서는 아예 UI가 변질될 때가 많아졌다.

Active X가 기존의 MINE TYPE까지 고쳐가며, 설치해야 되었던 Plug -In 프로그램을 쉽게 웹과 연결하도록 만든 건 사실이지만,일부에서 보안적으로 취약한 것을 악용하여 많은 악성 프로그램이나 악성 고드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컴퓨터는 과도한 플러글인의 설치를 통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점점 줄어드는 익스플로러 사용자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90%에 달한 사용자가 2007년에는 70%대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5년만에 익스플로러 7로 업그레이드 한다. 그후 2008년에는 구글의 크롬이 출시되면서 웹브라우저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2010년 2월 웹브라우저의 통계를 살펴보면 익스플로러가 여전히 선두에 있지만 사용자 비율은 61.58%로 예전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해졌다.

MS의 야심작이라 할 IE 8 조차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처럼 과거 넷스케이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IE가 90% 육박하는 점유율로 승승장구하다 파이어폭스,크롬,사파리,오페라 등의 출시로2010년 2월에는 62%까지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웹브라우저 선택의 폭도 넓어졌으니 '인터넷 = 익스플로러'라는 공식은 사라지는 듯하다.

이에 따라, 웹표준의 목소리가 증가해오고 있다. 여러 국가들에서도 더 이상 MS〈끼워팔기〉를 쳐다보고만 있지 않다.

유럽의 많은 국가 들에서도 더 이상 Windows O/S에 기본으로 인터넷 익스플로워를 탑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 Windows Media Player ,MSN Messenger 까지 O/S에 더 이상 끼워팔기 할 수도 없도록 저지하기 시작했다.

브라우저 독점공급이 끝나면서 이용자들도 서서히 다른 브라우저를 찾기 시작했고, 파이어 폭스의 시장점유율이 8:2까지 증가하고 있다.

약 10면 만에 다시 웹브라우저 전쟁이 시작되기 시작하고 있다.

(2)웹브라우저 전쟁의 시작

넷스케이프의 몰락 이후 한동한 웹브라우저 시장은 IE가 거의 독점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실 이 기간 동안 기술적인 혁신도 거의 없었다. 그런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다가 넷스케이프의 소스코드를 이어 받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파이어폭스가 나오면서 시장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대체할 수 있는 웹 브라우저가 점점 각광을 받고 있는데,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모질라의 파이어폭스(Fire FoX),구글의 크롬(Chrome),애플의 사파리(Safari)등을 들 수 있다.

① 파이어 폭스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모질라의 파이어 폭스다. 이 파이어 폭스는 실행 속도나 안정성 면에서 인터넷 익스플러러를 압도한다.

글자와 그림만 있는 웹페이지라면 인터넷 익스플로러보다 빠른 로링 속도를 보여 외국에서는 이미 파이어폭스의 사용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파이어 폭스는 전체 웹브라우어 시장 점유율의 20%정도를 차지하면서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파이어 폭스의 시장점유율은 주로 유럽 지역의 반MS 감정에 의지한 것으로 실제 북미지역에서 파이어폭스 점유율은 미미한 편이다.

②크롬

2008년 9월 2일은 인터넷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Mㄴdml '인터넷 익스플로러'에 구글이 크롬'으로 공개적인 도전장을 내민 날이기 때문이다.

구글 코롬은 공교롭게도 파이어폭스와 같이 넷스케이프의 소스 코드를 이어 받은 오픈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개발되었다.

주요 기능도 오픈 소프트웨어 기술을 차용하였으며, 전 세계 개발자가 구글 크롬의 기술을 활용해 자신만의 브라우저를 손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 세계 점유율 3위인 구글의 크롬도 떠오르는 신흥 강자다.

파이어 폭스에 버금가는 실행 속도와 깔끔한 디자인이 잘 어우러져 인터넷 익스플로러 실증을 느낀 사용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③사파리

위 브라우저들에 비해 아주 미약한 세력이지만, 나름대로 마니아 노선을 구축하고,있는 애플의 사파리도 있다.

Mac와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 선보인 윈도우용 웹 브라우저인데,항상 탁월한 제품 디자인으로 각광을 받는 회사답게 '디자인'하나만은 확실히 눈에 뛴다.

웹페이지 로딩 속도도 파이어폭스나 크롬과 비슷하며, 무엇보다 독특한 팝업창 돌출 모양이나 웹페이지 내 텍스트 상자의 크기를 변경할수 있는 등의 부수적 기능은 사용자의 시선을 끌고 있다.

①인테넷 익스플로러 : 마이크로 소프트으 윈도우 운영체제 설치 시 자동으로 설치되는 브라우저로,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브라우저

                           장점 : AcitveX를 지원해 인터넷뱅키으쇼핑등에서 사용가능,GPU 지원

                           단점 : 윈도우에서만 사용 가능. 느린속도, 웹 표준 지원이 낮음. Activex충돌 등으로 프로그램 종료가 잦은 편

②파이어 폭스(Firefox) :오랫동안 오픈소스로 개발되어 온 개방형 브라우저

                           장점 : 다양한 운영체제 환경에서 사용 가능. 뛰어난 웹 표준 지원, 탭 프라우징 및 많은 확장 부가기능 사용 가능

                           단점 : 초기 구동 속도가 느림

③크롬 (Chrome) : 구글에서 개발 중인 브라우저로, 2개월에 한번씩 업그레이드 중

                      장점 : 다양한 운영체제 환경에서 사용 가능, 뛰어난 웹표준 지원, 탭 브라우징및 많은 확장 부가기능 사용 가능

                      단점 : 메모리 사용량이 많음

④오페라(Opera) : 오페라사에서 개발 중인 브라우저

                     장점 : 웹 표준을 가장 빠르게 적용하며, 웹 표준을 가장 많이 구현하는 브라우저,오페라 위젯 사용 가능, 다양한 통합 기능 제공

                     단점 :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3)웹 브라우저 전쟁의 관전 포인트

1차 브라우저 전쟁과 지금 2차 브라우저 전쟁의 경쟁 구도의 차이점은 뭘까?

예전 잘 나가던 넷스케이프 상용업체로서 웹브라우저를 판매했고, MS는 인터넷 에서 웹 브라우저라는 플랫폼이 가져올 위협에 위기의식을 느꼈다.

때문에 운영체제에 무료로 끼워 팔기를 하거나 과도한 비표준 기술들을 탑제하면선 상대방을 압살하는 경쟁 방식을 택했다.

그것은 회사로서 생존해야 할 넷스케이프 마찬가지였다.

이들간 경쟁에서 발생한 피해는고스란히 양쪽 비표준 기술들을 고려해서 개발해야 했던 웹 사이트 제작자와 브라우저 선택권을 제약 받은 사용자 모두에게 돌아갔다.

특히,브라우저 전쟁 이후 IE의 독점 기간 동안 브라우저 경쟁이 없어져 웹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이용 경험을 저해 받은 사용자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2차 브라우저 전쟁의 경쟁 구도가 1차 브라우저 전쟁과 다른 점은 바로 상용소프트웨어와 무상 소프트웨어의 경쟁 구도라는 점이다.

파이어폭스는 소스 코드가 공개된 완전한 무료 소프트웨어이기 때문에 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보다 사용자의 이익을 대변한다.

따라서 다른 상용 브라우저보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를 떠나서 진취적인 기능들을 탑재할수 있다.

과거 모질라플랫폼으로 개발되었던 네스케이프 7.0은 AOL의 광고를 위해 사용자에게 유용한 기능이었던 팝업 차단 기능을 빼는 실수를 범한 적도 있다.

IE7의 대부분의 기능이 파이어폭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한 것만 보더라도 새로운 경쟁 구도가 가지는 장점을 잘 설명해 준다. 특히 이미 독점 체제를 굳히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느끼는 위기의식은 과거에 비해 적은데다 잠재적인 경쟁자가 아니므로 마이크로소프트에 장기적으로 이득이 된다.

①웹 표준에 기초한 보편적 기술 경쟁 구도

파이어폭스의 장점 중에 하나는 넷스케이프와 IE의 경쟁에서 빚어진 비 표준의 유물을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웹 표준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00년 부터 구조와 표현을 분리하여 웹이 최초로 지향하던 웹 페이지 개발 방식을 주창해온 웹 표준 프로젝트(Web Standards Oroject)의 주장과 이에 따른 웹 사이트 구축 트랜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파이어폭스뿐만 아니라 오페라나 사파리 브라우저도 웹 표준 호환 기능을 대폭 업 그레이드 해 왔다.

이런 기류를 인지했는지 IE7에서도 표준 모드에서는 다른 브라우저와 같이 동작하도록 웹 표준에 관련된 꽤 많은 버그를 고쳤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사의 렌더링 엔진에 손을 본것은 수년 만의 일로 기억되기고 한다.

과거 브라우저 전쟁을 경험했던 국내 웹 개발자들 일부는 지원해야 할 브라우저 종류가 늘어남에 따라 앞으로 개발을 할때  모든 브라우저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몇배의 노력이 들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모든 브라우저에서 지정하는 웹 표준 모드는 상위호환성(Forward Compatibility)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새로운 브라우저 시장에 의해 능력을 스킬럽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셋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웹 디자이너나 UI 개발자에게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열어 주는 계기가 될것이다.

브라우저 제조사의 입장에서도 이미 XHTML2, DOM3,SVG,XFORM, ECMAScript2.0등 표준 모드에서 지원해야 할 웹 표준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고,과거와 같은 비 표준 경쟁은 인터넷 산업 전체에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브라우저 시장을 넓히는데도 한계가 따른다는 사실을  모두 인지하고 있다.

오히려 정체기에 들어선 표준 기구인 W3C를 견제하기 위해 모질라,오페라,애플등 브라우저 제조사들이 주축으로 HTML을 확장하여 좀더 풍부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WHATWG를 만들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표준을 제정하려는 건전한 움직임도 존재할 정도가 되었다.

②이제는 플랫폼 경쟁이다.

과거 넷스케이프에 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기감은 매우 컸었다. 인터넷이 빠르게 도입되자 웹 브라우저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예측했기 때문이다.

넷스케이프조차도 자사의 소프트웨어 프랫폼에서 인터넷의 모든 것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따라서 자사 소프트웨어에 자체 기술로 플러그인(NSPlugin)을 올리고 비 표준 기술들을 도입하고 그뿐만 아니라 웹 서버 시장까지 공략함으로써 자신들의 인터넷에 대한 소프트웨어 플랫 폼 장악력을 높이려 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플랫폼에 대해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철저한 공격에 무기력하게 당했다.

닷 컴 붐이 꺼진 후에 초고속 인터넷의 발전과 일반 다수 사용자의 참여로 인터넷과 웹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재 시점에 와서야 플랫폼으로 웹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바로 인터넷 플랫폼의 진정한 의미는 데이터 플랫폼이며,사람들이 쉽고 가벼운 기술로 자신의 데이터를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는 것이 바로 웹에 적합한 플랫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를 웹 2.0으로 정의하고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이용했던 구글.아마존,이베이를 웹 2.0 기업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컴퓨터 환경의 역사가 말해 주듯 좋은 기술 플랫폼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사용하도록 열어 주고 함께 이용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그 과실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60년대 터미널을 이용하게 한 메인 프레임 기업들이 그랬고, 80년대 PC를 만든 IBM이 그랬다.

90년대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장악한 MS가 그렇고 2000년대 웹을 장악한 웹 2.0기업들이 그렇다.

파이어푹스가 주목 받는 이유 중 가장 큰것이 바로 확장기능(Extensios)이다.

확장 기능은 XML과CSS 그리고 자바 스크립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만들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파이어폭스는 쉬운 웹 언어로 브라우저 기능 업그레이드나 설정 변경을 원하는 대로 할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혹자는 IE7과 파이어폭스 2.0의 기능을 비교하기도 하는데, IE7의 모든 기능은 파이어폭스 확장 기능으로 모두 충족되거나 충족 할수 있다.

파이어폭스의 이러한 플랫폼 전략은 브라우저 제조사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사파리 브라우저를 기반으로 매킨토시의 대시보드와 오페라의 위젯형 서비스가 도입되었고,IE에서도 부가기능(Add on)사이트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항상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테스크톱과 인터넷을 연결하는 모든 통로로서 웹 브라우저 플랫폼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에게 강점으로만 부상했던 초고속 인터넷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 시점에서 제 2의 웹 브라우저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한 현재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이것이 미래의 비즈니스를 지배 할 것이다.

한편, '21세기 브라우저 전쟁'의 핵심 코드는 '탈 PC'로 요약할수 있다.

유비쿼터스(ubiquitous : 사용자가 컴퓨터나 통신망 따위를 의식하지 않고 ,때와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수 있는 통신환경) 시대인 만큼,모바일일 브라우저 전쟁의 뜨거운 격전기가 되고 있으며,특히 휴대 인터넷이 커다란 주목을 끌고 있다.《경영사례연구(The Study of Business Case)제 2판 참조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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