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발모, 부여 사비길과 공주 우금치 동학혁명탑에서 애국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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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발모, 부여 사비길과 공주 우금치 동학혁명탑에서 애국을 떠올리다
  • 홍경석 편집국장
  • 승인 2024.10.09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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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의 재발견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중략) 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

10월 5일 ‘행복한 발걸음들의 모임’(행발모) 139번째 걷기 행사가 부여 사비 길에서 있었다. 40인의 행복쟁이들이 부여 신동엽 문학관, 궁남지, 부여 왕릉원, 국립부여박물관, 정림사지, 낙화암 등을 둘러보며 10km 이상을 걸었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백제문화의 극치, 백제금동대향로 앞에서 잠시 넋을 잃었고, 백제 땅을 걸으며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 문화를 생각하고, 참여 회원 모두는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

부여에서 공주로 돌아오며 동학혁명군의 최후 전투장이었던 공주 ‘우금치’ 동학혁명 위령탑을 들렀다. 일행이 묵념하며 부른 노래다. 이 노래는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완주 지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고 알려진 구전민요이다.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을 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이 '녹두'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유는 바로 체격 때문이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1855년 전라도 고창군 죽림리 당촌에서 태어나 1895년까지 살았다.

자는 명좌(明佐), 호는 해몽(海夢)이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몸이 왜소했기 때문에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고, 뒷날 녹두장군이란 별명이 생겼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기념사업부장 문병학 님의 글에 보면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중세의 낡은 질서를 개혁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만민 평등 세상을 추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민주주의 혁명이다.

또한 19세기 중엽부터 본격화된 서세동점시기(西勢東漸時期) 외세의 국권 침탈, 특히 일본의 침탈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고자 했던 반일 민족 항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은 그 역사적 위상과 의미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지난 한 세기 동안 반란 사건으로 치부되어 왔다. 갑오년 겨울, 동학농민군이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과 관군 연합 부대의 근대적인 신무기를 극복하지 못한 채 쓰러지면서 미완의 혁명으로 마감되었지만 갑오 선열의 숭고한 정신은 구한말 항일 의병, 일제강점기 3·1운동과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해방 이후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등으로 면면히 이어져 우리나라 근현대 민족민주운동의 본원(本源)으로 자리해 왔다. 동학농민군이 쓰러진 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로 접어들었고, 해방 이후 세계사적 차원에서 전개된 동서냉전체제 구축 시기에 빚어진 민족 내부의 극심한 좌우 대립, 민족 분단, 한국전쟁 등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사학자 또는 식민사학자들은 동학농민혁명이 지닌 민족항쟁으로서의 의미를 거세(去勢)하고 ‘동비(東匪)의 난’, ‘비적(匪賊)의 난’ 등으로 왜곡했고, 전라도 고부의 지역적 ‘민란(民亂)’ 등으로 축소했다.

다행스럽게 지난 1980~90년대 민족민주운동 세력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혁명 100주년을 전후해 전국에서 동학농민혁명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이 펼쳐져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되었다.

그런 노력에 힘입어 대중적인 역사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마침내 대한민국 제16대 국회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4년 3월 5일)이 제정되었다.

나아가 2006년도에는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과 맞서 크게 승리한 황토현전승일(5월 11일)이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제정(2019년 2월 26일)되었다. 이날 동학 혁명의 의의를 되새기며 참여 회원들이 이런 작물이 왜 생산이 적은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이에 농업 전문가인 국제사이버대학교 김완수 객원교수는 “녹두의 재배면적은 그리 많지 않지만, 녹두 빈대떡이나 숙주나물 같은 녹두 음식은 전통음식으로 사랑받고 있어서 특성을 잘 알고 재배를 하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작물이다.

하지만 녹두는 동시에 꽃이 안 피니까 수확을 여러 번 해야 한다. 같은 두류인 콩하고는 달리 일시 수확이 곤란하여, 수시로 수확하지 않으면 꼬투리가 터져서 탈립되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녹두재배에 어려운 점”이라고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공주 나태주 시인의 [풀꽃 문학관]을 관람하고 공산성 시장터에서 공주의 명물 밤 막걸리로 건배를 하며 40명의 행발모 회원들의 139회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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