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석 칼럼] 봄에 죽자? 봄이니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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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칼럼] 봄에 죽자? 봄이니까 살자!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3.03.28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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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과거의 포로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였다.

화제를 모았던 그 드라마가 끝났다. 보는 내내 마음이 쓰라렸던 ‘더 글로리’의 마지막 화에서는 자못 뭉클한 장면을 만날 수 있었다.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한 어린 ‘동은’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저쪽에 할머니 한 분도 물로 뛰어드는 모습이다.

휘청이다 허우적대는 할머니를 본 동은은 제가 강물에 들어온 이유도 잊은 채 할머니를 겨우겨우 물가로 끌어낸다. 서로에 이끌려 물가로 나온 할머니는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 봄에."라는 말을 한다.

이에 동은은 더욱 서럽게 울고 할머니는 그런 동은을 꼭 안아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도 많이 울었다. 사람은 과거의 포로다.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엄마는 없었지만, 줄곧 1등을 달렸다.

같은 반의 소위 금수저 출신들도 공부에서만큼은 절대로 나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들은 나를 “엄마 없는 아이”라며 노골적으로 핍박했다. 공부를 잘해서 상장이나 표창장을 받아도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집에 갖고 가 봤자 이를 반가워하고 짜장면 따위의 별식이라도 사주는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는 게 너무 힘들고 고달파서 극단적 선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를 잡아준 사람은 장항선 열차에서 홍익회 물건을 팔던 아저씨였다.

“앞으론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거라. 그럴수록 열심히 살다 보면 반드시 좋은 날은 온단다.” 그 아저씨가 따라준 소주 한 잔을 입에 부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더 글로리>에서 어른이 되어 비로소 복수를 완성한 동은은 회상한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 이제야 깨닫습니다. 저에게도 좋은 어른이 있었다는 걸.”

그렇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 은인이다. 어제 대전광역시청에서 만드는 월간지 <일류도시 대전> 4월호가 발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편집장님의 후의 덕분에 30부를 가지고 왔다.

그 책의 P.42에 <‘홍키호테’의 인생 역정 들어보실래요?>가 실렸다. ‘소년가장 아픔 딛고 작가로 활동하는 홍경석씨 ’두 번은 아파봐야 인생이다‘ 출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를 보면서 다시금 눈물이 솟구쳤다.

간혹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도 <더 글로리>의 주인공 동은에게 물이 너무 차니 봄에 죽자던 할머니의 위로가 있었던들, 또한 누가 됐든 ‘그렇게 어려울 때 뭐가 됐든 누가 됐든 날 좀 도와줬다면 어땠을까?’라는 것이다.

물론 다 부질없는 짓인 줄 잘 안다. 나를 아끼는 지인은 말한다. “홍 작가가 남들처럼 대학만 나왔어도 정말이지 큰 자리에서 떵떵거렸을 것을...”

하지만 다 소용없는 불필요한 말이라는 것 잘 안다. 어쨌든 나는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한 권 내지 못한 사람에 비해 벌써 다섯 번째 저서를 발간한 엄연한 작가 아니던가!

<더 글로리>에서 할머니가 동은에게 “봄에 죽자”고 한 말은 실은 “봄을 기다려 피어나라”는 의미였다는 걸 동은은 뒤늦게 깨닫는다. 맞다. 봄에 죽자? 아니다. ‘봄이니까 살자!’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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