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33관음성지 제 31호 신륵사
상태바
한국 33관음성지 제 31호 신륵사
  • 김승수 기자
  • 승인 2022.09.01 13: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연락처 : 031-885-2505
www.silleuksa.org
방문일 : 2022년 8월 17(수)
미륵사 입구
미륵사 입구

 

한국 관음성지 중 제 31호 신륵사를 다녀왔다.

신륵사는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여름햇살이 따갑게 내려 쬐는 시간에 그 무엇을 위한 기도인지 아니면 신륵사와의 연이 된 사연인지 아무튼 열심히 달려 도착했다.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시내에 위치한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평지에 위치한 절이지만 뭔가 가슴에 영감이 다가오는 그런 곳으로 기억이 되는곳이다.

고려 고종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의 '신'과 제압의 뜻인 '륵'을 합쳐서 『신륵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한국 관음성지 제 31호
한국 관음성지 제 31호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변화신으로 여겨져 왔다. 이처럼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강가에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 것으로 해석될수 있다.

홍수와 범람이 잦은 남한강의 자연환경과 지역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옛 선인들이 이절을 세우고 강을 돌본것에 이러한 설화가 생긴 것으로 해석할수 있을것이며, 그 속에서 한국의 자생 풍수에 따른 비보적인 의미 역시 부여되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산이 아름답고 물이 맑아 낙토(산이 맑고 물이 아름다움)라 불리웠던 여주에 자리 잡은 신륵사,원효 스님이  신성한 가람이 세워질 곳이라는 현몽을 하여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우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정성껏 기도를 올렸더니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한 후  비로서 절을 세울수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미륵사 극락보전
미륵사 극락보전

인도에서 오신  지공 스님으로 부터  법을 전해 받은 후 선풍을 드높인 고려국사 나옹스님이 가르침을 펼쳤던 곳이며,대장경을 조성하고  장경각을 지어 봉안했던 유학자 목은 이색은 나옹스님과의 교류 인연으로 스님의 비문을 지어 절에 세웠다.

또한 조선왕조 건국에 큰 영향을 끼쳤던  무학 자초스님의 영정이 신륵사 조사당에 모셔져 있다.

지금은 지역사회 노인복지와 가족복지에 적극적이며 다문화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이주민지원센터를 설립하여 다양한 다문화 사업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33관음성지 책자(신륵사 제 31성지)
대한민국 33관음성지 책자(신륵사 제 31성지)

"여주에서도 신륵사는 수승한 경관과 오랜 역사로 인하여 여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온 곳임을 알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찾아가는 고찰은 분명 이유가 있는 곳이다. 신령한 곳 영험한 곳도 중요하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평안하게 다가오는 곳이기에 찾게 된다. 불자도 아니지만 조용한 산사를 찾아 떠나온 절이기에 무엇보다도 가슴이 편하다. 산속이 아닌 곳에 위치한 절이지만 아름다운 경관을 마주하는 순간이 아주 깊이 마음에 져미어 온 곳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