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친구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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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의 거울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2.07.15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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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구 가짜 친구
술을 마셔보면 비로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술을 마셔보면 비로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오늘도 고온다습(高溫多濕)한 날씨는 무더위를 가중했다. 시원한 장맛비가 쏟아지길 기대했지만 하늘은 오늘도 인색했다. 오후에 그저 소나기, 그것도 잠자리 오줌처럼 찔끔 내리곤 달아났다.

 

일을 마친 뒤 귀가하는데 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취객이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대낮부터 폭음했지 싶었다. 엊저녁 ‘술 풍경’이 떠올랐다. 평소 존경하는 모 회장님께서 얼마 전 취재에 협조해 주어 고맙다며 술을 사겠다고 하셨다.

 

약속 시간에 가서 뵌 뒤 소주 세 병을 나눠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자주 가는 술집이라며 오라는 것이었다. 마침 술이 좀 부족하던 터였다. 은행동에서 내려 술집까지 걸었다.

 

안주도 푸짐하여 술이 물처럼 잘 넘어갔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나브로 과음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화장실을 다녀와 다시 또 소주를 마셨다. 한데 맛이 이상했다. 그랬다!

 

그 친구는 내가 없는 사이 소주병에 냉수를 채운 뒤 그걸 술이라며 소주잔에 연신 따라주는 것이었다. 그 사실은 내가 술이 덜 취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왜 나에게 소주 대신 냉수를 줬을까?

 

그 ‘역사’를 알려면 지난달로 회귀해야 한다. 그 친구를 유성에서 만나 낮술에 이미 거나했다. 친구는 2차를 가자면서 택시를 불러 나를 동학사 입구까지 태우고 갔다. 평소 어리석고 술탐까지 심한 터였기에 거절할 수 없었다.

 

거기서 또 부어라 마셔라 했더니 그만 기억이 상실되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는 터져라 아팠고 속은 콘크리트로 비빈 듯 고통스러웠다. 그럴 즈음 그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 “어제 동학사에서 친구 집까지 택시비를 선납하고 태워 보냈는데 잘 도착했는가?” - 단박 고맙다는 답신을 보냈다.

 

- “친구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술이 많이 약해졌더라. 몸 생각해서 절주하게나. 그리고 어제 자네가 폭음을 일삼기에 내가 일부러 소주병에 물을 넣어 소주라고 속였다네.” -

 

순간, 그 친구에 대한 감사함이 해일(海溢)보다 높이 밀려왔다. 친구야, 정말 고마웠다! 무대책의 술꾼 친구를 진정 아끼는 자네가 진짜 친구다!!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양립한다.

 

친구도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가 있다. 진짜 친구는 어제의 그 친구처럼 만취를 염려하여 소주 대신 맹물을 준다. 이런 경우, 사기가 아니라 선의의 거짓말이다. 합법이다. 그도 모자라 택시로 집까지 안전하게 보낸다.

 

반면 가짜 친구는 계산도 안 하고 저만 홀랑 달아난다. 친구 믿고 마음껏 마셨는데 정작 그 친구는 배신을 ‘때린’ 것이다. 한 마디로 동상이몽(同牀異夢)의 웃픈 결론이 된 것이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술에는 장사가 없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술이 술을 마시고 결국엔 술이 사람을 마신다.” -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요즘 같은 폭염 때나 한겨울 엄동설한에 과음, 아니 만취 뒤에 노상에서 잠이라도 든다면 때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비극과 사달이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폭음은 때로 꼴불견, 그리고 망신살과 자주 나란히 걷게 되는 동행자가 될 수 있다. 하여간 “친구를 보여달라. 그럼 네가 누군지를 말해주겠다”는 말이 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내 친구를 둘러보면 된다. 친구는 나의 거울이고, 나는 친구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 깊지 못한 나무와 같다’는 속담은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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