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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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2.06.30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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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참 좋은 것이었다
젊음은 꽃과 같아서 금세 시든다
젊음은 꽃과 같아서 금세 시든다

 

=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흘러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 꿈에도 잊지 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 =

 

나애심이 부른 노래 [과거를 묻지 마세요]이다. 1959년 개봉한 동일 제목의 영화 주제곡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노래가 나온 해에 내가 태어났으니 올해로 벌써 64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주연으로는 황해·문정숙·박노식 등이 열연한 이 영화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월남(越南)한 청년이 본의 아니게 절도죄를 범하고 법정에 서는데 그의 친구인 변호사가 열띤 변론을 한다.

 

마침내 석방된 청년이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한다는 내용이다. 어제 숙부님의 49재가 있어 아산에 갔다. 49재를 마친 뒤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아산에 살고 있는 D형께 전화했다. 같이 식사와 술을 나누고자 함에서였다.

 

하지만 D형은 일을 하는 중이라 시간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그거참 아쉽네요! 그러면 또 언제 만나죠?” 코로나로 인해 3년 가까이 D형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일부러 대전까지 내려가서라도 너를 꼭 만나마! 우리 인연이 어디 보통 인연이었더냐?”

 

“맞아요. 형~ 우리는 자그마치 50년 가까운 우정과 정리(情理) 아닙니까?” D형을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말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 때였다. 당시의 내 나이는 ‘쇠도 씹어 먹는다’는 열정의 10대 말.

 

그때 나는 호텔에서 지배인으로 일했다. 잘생긴 데다가(?) 호텔리어답게 항상 말끔한 정장, 거기에 돈까지 잘 버니 날 따르는 아가씨들도 많았다. 그즈음 D형과 인연이 닿아 호형호제(呼兄呼弟)로 발전했다.

 

얼추 만날 술집을 전전했으며 고주망태는 일상이었다. 하나 그건 우리들의 어떤 일종의 자랑스런 훈장(勳章)이었다. 그 자리에는 죽이 맞은 또 다른 선배인 J형이 가세했다.

 

"그나저나 J형은 어디서 뭐 하며 살아요?" “글쎄다. 나도 걔를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근황을 모르겠어. 혹자의 전언(傳言)에 따르면 과음 탓으로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J형은 나와 D형보다 얼추 갑절은 술을 더 마시는 자타공인 ‘주당 당수’였다. 세월처럼 빠른 건 또 없다. 부지세월(不知歲月, 세월이 가는 줄을 알지 못함)이라더니 그 말이 하나도 안 틀리다.

 

대신 만고풍상(萬古風霜)답게 당시 항상 푸르기만 할 줄 알았던 나의 청춘은 세월에게 죄 강탈당하고 지금 남은 건 반백의 머리에 쭈글쭈글한 얼굴뿐이다. 누가 봐도 “옛날의 나를 말한다면 나도 한때는 잘나갔다.”고 포효하는 가수 전승희의 [한방의 부르스]조차 떠올릴 수 없다.

 

그렇긴 하되 지난 시절의 아름다웠던 사연과 추억만큼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모닥불로 활활 타고 있다. 마치 류기진의 히트곡 [그 사람 찾으러 간다]에 나오는 가사 “당신도 사연 있잖아”처럼 그렇게.

 

나는 끝으로 D형에게 다음과 같은 조크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우리가 과거엔 어떻게 놀았지요?” 즉답이 왔다. “우리 서로 과거는 묻지 맙시다.”

 

아무튼 지나고 보니 알겠더라. 젊음은 참 좋은 것이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그 젊음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꽃과 같아서 금세 시든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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