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저는 진짜 힘들었거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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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저는 진짜 힘들었거든유!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2.06.27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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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같이 묻어달라!”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영화 ‘국제시장’ 포스터

 

=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 거리마다 물결이 거리마다 숨결이 휩쓸고 지나간 허황한 거리에 /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 ” =

 

1992년에 가수 최백호가 내놓은 히트곡 [보고 싶은 얼굴]이다.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사람은 누구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터. 나는 맨 먼저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맡아 키워주신 성자(聖者)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집을 나갔다. 핏덩이였던 나를 어찌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동네에 수소문하여 당시 아들과 같이 살고 있던 할머니께 나의 양육을 부탁했다.

 

일찍이 상부(喪夫)하여 외롭던 할머니는 기꺼이 승낙하셨다. 후일 할머니의 아드님은 뇌전증이 재발하는 바람에 우물가에서 뇌진탕으로 작고했다. 당시는 간질병이라고 불렀다. 간질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 심하기 때문에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변경되었다. 하여간 아드님의 타계 이후 할머니는 더더욱 나에게 의존하셨다.

 

천안시 봉명동 초가집에서 할머니는 늘 그렇게 수제비와 꽁보리밥을 주셨다.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쌀밥과 고깃국은 언감생심이자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다. 그랬어도 그때가 나는 가장 행복했다.

 

하지만 사람은 생로병사를 가는 나그네다. 할머니께서도 어느 날 결국 세상을 버리셨다. 할머니가 땅에 묻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같이 묻어달라!”며 말도 안 되는 어깃장을 놓았던 때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뒤 나의 외로움과 생의 질곡은 더욱 거칠어졌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유지(遺志)를 충실히 좇았다.

 

= “사람은 있고 없고를 떠나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겨. 그래야 훗날 반드시 복도 받는 겨.” = 할머니의 말씀은 조금도 틀리지 않고 옳았다. 세상은 비록 나를 괴롭히고 윽박지르기 일쑤였지만 경찰서 한 번 안 가고 일탈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덕분에 ‘천사표 아내’에 이어 ‘자식농사에 성공한 농부’까지 되었다. 할머니 다음으로 나를 아껴주신 분은 숙부님이다. 내일이 어느새 숙부님의 49재(四十九齋)이다.

 

‘49재’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 의례를 말한다. 불교 의식에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齋)를 올려 죽은 이가 그 동안에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좋은 곳에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 의식이다.

 

생존해 계셨을 적엔 때로 만취하여 찾아가 눈물받이(눈물을 많이 흘리는 신세의 사람)의 신세타령까지 하곤 했거늘... 그런데도 이 못난 조카의 술주정을 죄 받아주셨는데...

 

천만 관객을 돌파한 방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는 다음과 같은 멘트로 관객을 울린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이를 차용하여 나도 한 마디 하고 싶다.

 

“할머니, 저도 약속 잘 지켰지유?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고 자부해유. 근데 저는 진짜 힘들었거든유!" 내가 보고 싶은 얼굴, 그 두 주인공은 할머니와 숙부님이다. 생각만으로도 나는 이미 눈가에 샘터가 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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