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몸을 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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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몸을 벤다
  • 홍경석 시민기자
  • 승인 2022.06.15 09: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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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고
오늘 자 모 신문 1면 하단에 실린 광고
오늘 자 모 신문 1면 하단에 실린 광고

 

“홍 선생님은 원래 그렇게 말씀이 없으세요?” 함께 일하는 이가 물었다. “... 그건 아닙니다만...” “온종일 소처럼 일만 하시며 당최 말씀을 안 하시길래...”

 

그랬다. 나는 요즘 입이 없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작당하여 대화를 나눈다. 한 마디로 나를 ‘왕따’시키는 것이다. ‘많이 배운 작가이자 할 말만 하는 사람’이라는 브랜드가 각인된 탓이지 싶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내가 더티하게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까지 그들의 대화에 합류할 이유를 발견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입만 열면 ‘10 더하기 8’이 저절로 나오는 사람, 항상 잡상스러운 대화에 내가 굳이 끼어들 여지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아침에 출근(공공근로장)하여 오후에 퇴근할 때까지 나 홀로 외로이 사색하고만 이야기를 나누는 외로운 사나이가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잡살뱅이들하고 잡스런 이야기를 안 나누니 차라리 편하다는 느낌이다.

 

오늘 아침 배달된 종이신문 1면의 하단에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을 규탄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국가정보원 전직 모임 양지회 회원 일동 명의로 게재된 이 광고를 보면서 단박 ‘말이 몸을 벤다’는 상식이 떠올랐다.

 

풍도(馮道)라는 사람은 당나라가 망하고 나서 후당(後唐) 때에 입신하여 재상을 지낸 정치가였다. 그는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 즉 다섯 왕조에 걸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 명의 임금을 섬겼다.

 

그야말로 또한 처세에 매우 능한 달인이었다. 그가 그처럼 관직을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는 가치관을 신봉하고 적극적으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는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뜻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뉴욕에서 가발 장사를 하여 돈을 많이 벌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닿아 출세한 인물이다.

 

그랬던 그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시금 국가정보원장에 깜짝 발탁했다는 것은 아마도 ‘구시화지문’과 ‘설시참신도’의 국정원 철학과 사상에 의거하여 봉직하라는 의미였을 터다.

 

그렇지만 그는 국가정보원장 임기를 마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 출연하여 특유의 달변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몸집을 다시금 키우고 있다.

 

박정희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사회 각계 인사에 대한 60년 치 정보가 담긴 ‘X파일’을 국정원이 보관 중이라고 밝힌 것도 모자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을 국가정보원장에 임명한 것에 대해서는 “제 입을 봉해 버리려고 보내지 않았는가 생각된다”라고 하는 등 나가도 너무 나가는 경거망동의 최대치를 보여주었다.

 

풍도라는 사람이 그 격변의 중화제국 오대십국 시대에도 변함없이 재상의 자리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위보다 무거운 입 덕분 아니었을까. 역대 국가정보원장치고 그처럼 입이 새털보다 가벼운 인사가 있었던가? 한번 뱉은 말은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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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터신문 2022-06-15 09:21:27
최고의 문필 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