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누룩선교사 이인자명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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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누룩선교사 이인자명인을 만나다
  • 손기석
  • 승인 2022.02.06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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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의 명인을 만나다 - 이인자명인 (쌀누룩, 발효조미료 및 발효장명인)

 

 

약선돌이의 건강칼럼 4 - 이인자명인편
(쌀누룩, 발효조미료 및 발효장 명인)

2021. 12. 24. 성탄절 전날 아침9시경 이인자 명인을 만나러 울산에 방문하였다.  성탄절 전날과 성탄절 당일을 울산에서 보내며 이인자명인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약 20여가지 쌀누룩관련 발효음식을 만드는 조리현장을 영상에 담아 첨부하였으니, 빠짐없이 참고하시어 발효의 새로운 세계로 입문하시기를 기대해 본다.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일본인들은 삶 가운데서 최고로 우선시하는 것을 신의라고 한다.

약 80여년전 1945년 해방이 되면서 우리나라 최고 전통있는 빵집인 ㅇㅇ당을 일본인이 본국으로 철수할 때, 명문대 나온 회계담당자나 지식이 뛰어난 경영관리자에게 매장을 넘기지 않고, 초등학교조차도 다니지 않았던 앙꼬를 만드는 기술자에게 매장 전부를 넘겼다고 한다.

결국 그동안 가게의 맥을 지켜왔던 맛을 제일 잘 지킬 수 있는 이에게, 맛에 대한 신의를 지킬 수 있는 이에게 가게를 넘긴 것이었다.

구마모토 미사토에서 그곳 전통방식으로 쌀누룩을 만드는 장면,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솜털같이 일어나는 누룩균을 만질 때면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구마모토 미사토에서 그곳 전통방식으로 쌀누룩을 만드는 장면,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솜털같이 일어나는 누룩균을 만질 때면 여전히 마음이 설렌다.

 

이인자명인도 이러한 좋은 신뢰의 인연이 일본의 전통 쌀누룩명인과 연결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펴낸 여러 책자(이인자 지음)를 일부 발췌하여 쌀누룩 전문가 이인자 보다, 인간냄새 나는 이인자명인을 조금이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인간냄새가 일본 누룩명인과의 신뢰와 함께 콜라보를 이루어 이인자명인의 손끝을 타고 우리 몸 속의 오장육부를 치료하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결국 좋은 발효음식은 체질과 식습관을 초월해서 약선음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 누룩과 발효에 대해서...

누룩하면 보통 술을 빚을 때 쓰는 발효제를 떠올린다.  누룩은 밀이나 쌀, 보리, 콩처럼 술을 담글 수 있는 전분으로 된 곡물로 빚는다. 

쌀로 빚으면 쌀누룩, 보리로 빚으면 보리누룩, 콩을 빚으면 메주가 된다.  누룩은 쉽게 말해 술이나 장류 같은 발효식품을 만드는 발효종균이라 할 수 있다.

누룩 곰팡이는 균사 끝에서 전분이나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만들어낸다.  누룩균이 생성한 분해효소의 작용을 이용해 막걸리, 식초, 간장, 김치, 감주, 정종 같은 발효식품을 만드는 것이다.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누룩과 쌀누룩 만들기

 

누룩은 히말라야 동쪽 지역에서 동남아시아 일대 및 중국  일본, 한국등 동아시아 벼 재배지역에서 개발된 독특한 발효기술이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누룩이 발달한 것은 기후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벼나 곡물의 재배에 좋은 사계절, 특히 여름은 곰팡이 번식이 좋은 고온다습한 날씨 덕분에 발효가 잘 되었기  때문이라 분석된다.

중국 대경시 한려원(한국요리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교육.
중국 대경시 한려원(한국요리 레스토랑)에서 요리사교육.

 

우리 음식문화는 누룩곰팡이를 이용한 발효를 통해 다양해져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동아시아 발효식품 문화권에서 누룩은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음식 재료 중 하나이다. 

누룩과 발효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아파트 생활의 비중이 높은 현대인들이 쉽게 발효음식을 만들 수 있고, 건강에 좋은 발효식품을 섭취 할 수 있을 것이다.

- "하늘밥상 소금누룩" 에서 일부 발췌
  (이인자 지음, 도서출판 기역, 2015)

일본 TV 방송 인터뷰 모습(위)미가에서 예약 손님들과 즐거운 한때.
일본 TV 방송 인터뷰 모습(위)미가에서 예약 손님들과 즐거운 한때.

 

- 발효식품 요리연구가  이인자명인 약력.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서 '소금누룩익는마을'을 경영하면서 발효식품을 연구, 개발하고 있는 이인자 요리연구가는 울산대학교 대학원에서 '한일 식문화 정체성 비교연구'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주제로 경상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쉰여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인생 2막'을 시작하기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치유의 식생활, 자연 장수식'을 추구하는 '매크로바이오틱'(Macrobiotics) 요리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일본 도쿄여자영양대학에서 일본 요리를 연구하였고, 도쿄 Kusi Macrobiotics 과정도 수료하였다.

귀국직후 발효음식을 소개하는 자리
귀국직후 발효음식을 소개하는 자리

 

일본 큐수 구마모토 마사토죠에서는 2년간 한국 발효 식문화를 일본에 전수하였고 현지주민들과 함께 지역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원료로 한 발효식품의 제품화 개발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다 일본의 '쌀누룩 발효명장'인 마사토죠 시노즈카 선생을 만나면서 쌀누룩 발효기술을 전수받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국내 미개척 분야인 쌀누룩 발효식품을 개발하여 16개 이상의 제품을 개발하는 성과를 얻었다.

구마모토 마사토초에서 쌀누룩을 배웠다.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이지만 나에게 고마운 스승이다.
구마모토 마사토초에서 쌀누룩을 배웠다.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이지만 나에게 고마운 스승이다.

 

국내외 기술보급에도 힘을 기울여 예비창업자를 위한 발효기술 멘토링 실시 관련 저서 발간 및 공개강좌, MBC와 부산KBS등 여러 방송과 매체를 통해 '쌀누룩 발효식품'의 우수한 효능을 소개하였다. 

또한 일본, 중국, 헝가리, 몽골 등에도 우리 발효식품을 전파하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그동안의 업적과 실적을 바탕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상을 수상했으며, 12월에는 '쌀누룩 발효조미료 및 발효장 부문'에서 한국 명인으로 선정되었다. 

구마모토시와 울산시 문화교류 가교역할을 할 때
구마모토시와 울산시 문화교류 가교역할을 할 때

 

저서로는 '하늘밥상 소금누룩', '쌀누룩 소금누룩 감칠맛!- 누룩 맛 특별 레시피 100선'이 있다.

이인자소금누룩익는마을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깨목1길 23-1
Tel_052-286-0500, 052-268-7494, www.소금누룩.kr

... '쌀누룩 소금누룩 감칠맛!'에서 발췌
(이인자 지음, 네오이마주, 2020)

구마모토 지인들과 함께 일본 전통가를 찾아. 맨 오른쪽이 기요나가 하루미 씨다.
구마모토 지인들과 함께 일본 전통가를 찾아. 맨 오른쪽이 기요나가 하루미 씨다.

 

※ 소개하고 싶은 책 훔쳐보기......

(중략).....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는 나라 전체가 여전히 가난한 시절이었다.  다행히 우리집은 아버지 사업이 비교적 순탄해 먹고 사는 것뿐 아니라 학교도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그리 특별하게 생각되지 않았는데, 엄마가 되고 아들 둘을 학교 보내는 나이가 되어보니 대가족의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얼마나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새삼 깨닫는다.  

소풍의 추억은 친구들과 쌓은 우정보다 먼저 유부초밥의 맛으로 피어난다(여고시절).
소풍의 추억은 친구들과 쌓은 우정보다 먼저 유부초밥의 맛으로 피어난다(여고시절).

 

육 남매 모두 대학을 마칠 때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이들과 씨름하면서, 가정을 꾸려가면서, 힘이 들거나 지칠 때면 문득문득 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려온다.

그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보릿고개를 넘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  시내에는 엉성한 대바구니를 메고 쓰레기를 줍는 넝마주이 아이들이 몰려 다녔다. 

다 떨어진 옷을 겨우 기워 입고, 깡통을 들고 다니며 먹을 것을 구걸하고 다녔다.

대학시절은 일본어와 영어에 심취했고, 야학 개미학교 추억으로 가득하다.
대학시절은 일본어와 영어에 심취했고, 야학 개미학교 추억으로 가득하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주도한 야학이 활발했는데, 우리 동아리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개미학교를 열었다.  먹고 사는 일이 힘에 부쳐 학교는 꿈도 못 꾸었을 아이들, 배움에 허기가 졌을 아이들이 열심히도 개미학교에 나왔다.

가르치는 대로 잘 따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영어도 조금씩 가르치기 시작했다.  다들 참 열심히 다녔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학교에 갔어요"한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잡혀 경찰서에 붙들려간 것이었다.  견물생심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쓰레기 넝마를 주우러 돌아다니다가 가게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저도 모르게 물건을 넝마 바구니에 슬쩍 넣은 것이다. 

친정어머니와 우리 육남매, 나는 어머니에게서 맛을 배웠다.
친정어머니와 우리 육남매, 나는 어머니에게서 맛을 배웠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아이들의 보호자 역할도 하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아이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했다. 

그럴 때마다 개미학교 선생님들이 경찰서에 찾아가서 손아 닳도록 빌어서 아이들을 데려오고는 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았다.  그래서 환심을 사려고 아이들이 시커먼 깡통에 얻어온 밥을 같이 먹기도 했다.

비위가 약한 나는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이 얻어온 밥을 같이 먹는 것이 더 힘들었다.  지금은 학창시절의 작은 추억으로 내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지만, 개미학교에서 경험은 뒤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첫 직장, 세상을 배우며 화려한 직장여성으로 살다.
첫 직장, 세상을 배우며 화려한 직장여성으로 살다.

 

그리고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깡통 밥이 가끔 그립기도 하다.

자기들이 얻어온 밥을 같이 먹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친동기처럼 우리를 따랐다. 가끔은 국수를 가져가서 같이 삶아 먹기도 했다. 

장작불을 지펴서 그 위에 시꺼먼 드럼통을 얹고 물을 끓였다.  국수를 넣고 훌훌 끓여서 겨우 간장 한 숟가락 넣어 먹는 것이니, 국수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음식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고명 하나, 제대로 된 양념장 하나 없는 그 국수를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지금도 국수를 먹을 때면 그 아이들이 생각난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다녔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아이들이나 모두 철없던 시절이었다.  드럼통에 끓이던 국수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왜 그때 양념장 한 종지, 김치 한 사발 준비하지 못했을까,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 먹지 못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 아이들도 지금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향여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황백지단 고명을 얹고 맛있는 육수를 자작하게 부은 잔치국수를 한 그릇 만들어 먹이고 싶다.

힘겹게 살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국수 하면 몸서리가 쳐질지도 모를 그들에게 정성이 가득 담긴 새로운 맛의 국수를 한 그릇 선물하고 싶다.

- "하늘밥상 소금누룩" 에서 일부 발췌
  (이인자 지음, 도서출판 기역,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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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자명인 발효음식 동영상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O-lIDAHUcvf8TKS7_VJiaqkEq7KQGM3-

☆이인자명인 밴드글

https://band.us/band/51284999/post/1268567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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