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는 유서도 둥글다
심승혁
등짐조차 둥글려
직선을 마다한 눈물의 깊이로
너의 숨 남김없이 쏟았구나
주어진 시간 얕게만 걷던 나는
용케도 발 헛디뎌, 다행히
너의 둥근 숨에 빠졌구나
뭣이 그리 바쁘냐고
체액의 생명 덜어 쓴
느린 글씨의 유서
금빛의 찬란이거나
동빛처럼 흐릿하지도 못해
달빛 팽팽히 끌어당긴 몸
은은하게 녹인 너의 밤이 성성하여
이제야 구부러지는 것도
사는 일과 다름이 아님을
달빛에 축인 입술의 깊이로
너의 곡선을 읽는구나
계간 <시마> 8호 (2021 여름호)
2017년 격월간 <문학광장> 등단, 제10회 <백교문학상> 우수상, 2020년 강원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선정, 제22회 <교산허균문화제> 전국백일장 은상
시집 『수평을 찾느라 흠뻑 젖는 그런 날이 있다』
함박눈이 내린 마당마다 발자국들이 놓였습니다.
우리는 또 오늘 우리의 몸에 어떤 발자국을 놓으며 걸었을까요?
달팽이가 제 몸에 새겨 놓은 곡선을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봅니다.
“구부러지는 것도 사는 일과 다름이 아님을” 헤아리고 싶어 손끝으로 그 마음을 따라갑니다.
-유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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